- 교육광장 2004 겨울호, 교육에 바란다 중에
교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 교사의 추모로 시작된 교권보호를 위한 교사들의 절규하는 외침은 두 달이 넘게 지속되었고, 그 결과 교육부에서는 생활지도 고시를 만들어 정당한 생활지도가 가능하게 학교에 시달하였다. 또한 교권보호 4법이 통과되어 법적인 뒷받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을 비롯한 관련 법 개정이 아직 미비하여 교사들은 교권 보호 대책이 미흡한 상태로 느끼고 있고, 고시 시행에 따른 지원은 미비한 상태로 학교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있어 업무를 둘러싼 학교 내 교원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악성 민원으로 고통 받았던 교사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해 교사들 전체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계속 드러나는 악성 민원 사례는 교사들의 교육 의지를 꺾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더욱 학교를 어렵게 한 것은 교육주체 간 갈등으로 인해 학교 공동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악성 민원으로 인해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고, 교육부의 징계 방침으로 인해 관리자와 교사들의 갈등은 선을 넘어버렸다. 한술 더 떠서 노란버스로 촉발된 현장체험학습 전세 버스 불법 문제는 교육부가 9.4 재량휴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과 연결되어 교사들 다수가 거부하면서 대규모 체험학습 취소 사태가 일어나면서 학교는 다시 혼란에 빠져들었다.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상처가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회복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겠지만, 칼이 되어 서로에게 향한다면 학교는 정말 피폐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교권 4법과 교육부의 생활지도 고시가 학교 현장에 잘 정착되어 교권이 회복되고 학교 교육력이 제고된다면 좋겠지만 미비한 법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과 민원이 발생한다면 해법을 찾는 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애써 만든 법과 제도가 양날의 검이 되어버리면 우리 교육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에 완충과 보완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요즘 MBTI 성향 분석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맹신도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생겼다는 점에서 교육에 시사사하는 바가 크다. 학생들마다 제각각 성격과 성향이 다르고 교사도 마찬가지이기에 서로를 이해하면서 관계를 맺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20년 전만 해도 학생들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기보다 교사의 지도 방식과 방침에 따라야 했었다. 이를 위해 체벌을 비롯한 강압적인 통제방식으로 학생들 전체를 교육했었는데 이는 학생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 인권이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학생 인권이 중요시되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들의 자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의 시대로 넘어오게 되었고 점차 교사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교육 방식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도 학생들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때로는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20~3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육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사들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학생 이해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되어 학생 지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교 교육의 상황에서 나타난 아동학대 방지법은 교사들에게 단호한 교육을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때로는 문제 행동 수정을 위해 단호한 교육이 필요한데 정당한 생활지도와 교육이 학대로 신고 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교사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체벌이 허용되는 시기와 다르게 학생 인권을 존중하며 교육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의 인식은 변화된 교육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 말만 듣고 교사의 지도를 전혀 인정 못하는 경우가 체감될 정도로 늘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는 학교는 지속적인 민원 제기를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다수는 그렇지 않겠지만 학교 교육을 신뢰하지 못하고 학교와 학부모 간 소통 부족이 해소되지 못하다 보니 갈등이 지속되고 악성 민원으로 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권 침해를 막고자 교권 보호 4법이 나왔지만 과연 그 법이 실행된다고 해서 학교 교육의 신뢰가 높아질 수 있을까? 교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만 생긴 것에 불과할 뿐 여전히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낮은 상태이고 그 장치마저 무용지물이 되지는 않을까 크게 걱정이 된다.
또한 학교 교육의 신뢰를 높이는 문제는 이제 학교만이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잘못된 인식과 행동으로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희생되었는가? 그 희생은 고스란히 학교 교육에 치명타를 줄 수밖에 없다. 고통 받는 교사들이 학교를 하나 둘 거부하게 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사들을 보유했던 공교육의 질은 얼마나 떨어질지 가늠할 수도 없다. 미국, 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교사가 없어 학교 교육이 파행을 겪고 있는 현실이 우리에게 닥쳐질 미래이고 이미 교대 자퇴생이 급증하고 있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물론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교권 회복을 위한 법 개정이다. 학교의 상황, 학교 교육의 특성을 무시한 아동 학대 방지법을 비롯한 관련법들은 개정되어야만 교사들이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법과 제도가 문화와 의식을 바꿀 수는 없다.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교육주체들의 노력이 동반되어야만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먼저 학부모들이 다모임과 같은 학부모 모임을 통해 교권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며 인식하게 해야 한다. 본교에서도 1학년 학생들끼리의 다툼에 학폭이 제기되었고 학부모들이 감정이 상하여 선생님을 힘들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해당 선생님은 병가를 내어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부모들끼리 이 문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권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협의하여 문제가 해결되었다.
<의견 모으기>
-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가 나서면 아이는 한발 뒤로 물러서게 된다.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기회를 주자.
-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해결해 주시지 무마하시지 않는다. 학교의 대처를 믿고 기다리자.
- 다른 집 아이의 일을 여기저기 알리기 어려워서 혼자 처리했던 것이 감정도 더 상하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 같다. 혼자 처리하려고 하지 말고 상황을 오픈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 첫 아이가 일학년이면 매순간 긴장되고,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모를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수면 위로 내 놓자.
-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그때 자세한 상황을 잊어버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너무 한쪽에 치우쳐서 아이의 말만 듣지는 말자.
- 쉬는 시간과 중간 놀이 시간에 학부모가 와서 지켜보면 안 된다는 식의 개입이 많아질 거다. 그러면 아이들 역시 부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또한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아 부정적이다.
-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우고,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 정기적인 반모임을 했으면 좋겠다.
-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면(다투고 돌아서서 다시 노는)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을 거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같이 지켜보자.
- 선생님이 아이의 교육이 아닌 보육에 집중하면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다. 유치원이 아니니 일일이 선생님께 연락하지 말고 선생님을 믿고 기다리자.
- 상황을 전혀 모르는 부모님도 계셔서 많이 놀라셨을 것 같다. 아이에게 불안이나 걱정을 내비치지 말고, 아이들이 학교생활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자. 다른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말들은 아이 앞에서 자제하자.
-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얼마나 다정히 대해주셨는지 알아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게 안타깝고, 자책도 든다.
- 오늘 이런 모임을 가졌다는 걸 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싶다. 당장 선생님께 연락드리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편지를 통해서 학부모의 의사가 어떤지 전달하자. 사사로이 전화 드리지 말자.
<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때 이렇게 하자>
1. 선생님께 전화
- 4시 퇴근 시간 전에 연락
- 개인 폰이 아닌 0508 안심번호로 연락드리자
- 혹시나 선생님께서 상황을 모르고 계실 수도 있으니 '이런 일이 있었어요. 지켜봐 주세요.'라고 하자. 취조하듯 사실관계를 따지지 말자.
2. 반모임을 잡아달라고 하거나 주변(반대표나 학년대표)에 도움을 요청하자.
3. 비공개로 진행되는 걸 원할 수 있으니 갈등조정위원회를 신청하자.
학교도 한발 더 뛰어야 한다. 특히 학교의 교육활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 해야 한다. 본교에서는 모든 학교들이 학기 초에 실시하는 학교 총회 이외에도 학년별로 교육과정 설명회를 실시하고 학기말에는 교육과정 평가회를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진행하며 교육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이 자리를 통해 학교 교육을 이해하며 교육활동 지원을 위해 체험학습 안전 도우미로 학부모들이 대거 참여한다. 주제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교과서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데도 교육과정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이 밖에도 본교에서는 학부모회와 학교가 연 4회 정기적인 협의회를 가져 학교 교육의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학부모회와 학부모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학교를 열고 있다. 학부모 참여 활동은 다시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학교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교 때부터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온 학교 문화는 학교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굳건하게 다지는 역할을 했고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학교 교육에 대한 민원은 높아진 신뢰를 바탕으로 학부모 다모임과 학부모회를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원만하게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서로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두려움이 있었고 소통의 어려움이 존재했지만 14년째 만들어온 학교 공동체는 교권침해를 비롯한 많은 문제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공동체 문화 덕분에 교사들은 안정감 속에서 창의적인 교육 기획을 펼쳐 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교사, 학부모, 학생이 서로 신뢰하고 호혜적인 학교가 되려면
현재 산산이 부서진 학교들이 각자도생 하고 있는 이 시점에 논하기에 참 버거울 수 있겠지만 모두가 존중받고 행복한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학교 공동체를 굳건하게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법 개정으로 교권보호를 위한 첫 출발은 되었지만 그로 인해 교육주체 간 거리가 멀어진다면 다시 그 피해가 우리에게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모두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안전장치로서 학교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데도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