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나타나는 2차 성징처럼
20대, 30대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신체의 변화를 느끼는 시기가 40대가 아닐까.
몇 날 며칠 밤마다 음주가무(?)를 즐기며 놀아도
아침이면 말짱하게 일어나 출근했던 예전의 강철 체력이
‘내가 그랬던 적이 있나요?’ 싶게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건 접어 두기로 하고,
이제는 새치라 우길 수 없을 정도로 부쩍 늘어난 흰머리가
3차 성징이라 부를 수 있는 신체의 변화를
가장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징표가 될듯하다.
30대부터 흰머리가 우후죽순으로 났다는 몇몇 친구들은
이제 와 무슨 흰머리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도 결국 늙고 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변화라고나 할까.
처음엔 흰머리가 보이는 족족 뽑아냈다.
흰머리를 뽑으면 뽑은 자리에 흰머리가 두 개 난다는 속설에도
가뜩이나 머리도 많이 빠져 숱이 적어지는 마당에
머리카락 하나 뽑고 두 개가 나면 남는 장사 아니냐며 뽑아대다가
사실 소중한 검은 머리까지 곁들여 왕창 뽑아낸 일도 허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 뒷머리에 비죽비죽 튀어나온 흰머리를 보곤
무심코 “너도 늙는구나.”라고 한 한마디에
뭔가를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흰머리는 채 길게 자라기도 전에 싹부터 뽑아 버렸는데
보이지 않는 뒤통수의 흰머리는 생각도 못했다.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니
뒷머리에 난 흰머리까지 혼자 처리하기 힘든 것이 당연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며 그 외엔 대강 넘겨버리는
나의 얄팍한 수가 이런 데서도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간혹 백발의 누군가를 보고
쿨하고 멋져 보인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보단 백발 하면 ‘백발 마녀’부터 먼저 떠오르니 원.
아직은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스타일을 위해 헤어 숍에서 이따금 했던
로즈브라운이니 다크오렌지니 하는 멋내기용 염색이 아니라
흰머리를 가리기 위한 새치 커버용 염색을 집에서 한다.
흰머리란 놈의 성장 발육이 어찌나 빠른지
생각보다 염색을 꽤 자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두 달에 한 번 원더우먼 망토 같은
커다란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염색을 하는 나는
사실은 한술 더 떠서
2차 성징이 한창이었던 사춘기 때도 하지 않았던 일탈을
지금 꿈꾸고 있다.
‘이참에 머리 색을 확 보라색으로 바꿔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