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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Apr 01. 2021

전 사기 치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중고 마켓.

나 역시 다 쓰지도 못하는 물건들을

너무 넘치게 가지고 산다는 생각이 든 이후

그리고 비우고 났을 때의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을 맛본 이후

당근마켓 애용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판매 상품이 많아지면서

구매자들로부터 받은 후기와 평가를 종합해 산출되는

매너 온도도 꽤 높아졌다.


모르는 개인끼리의 거래다 보니

중고 마켓에서 사기를 당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고 하고,

간혹 예의 없는 사람을 만나

남아 있는 인류애마저 사라질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들어왔던 터라

거래 관련 채팅이 오면 상대방의 매너 평가 등을

먼저 살펴보게 된다.

이왕이면 친절하고 매너 좋은 사람과

기분 좋은 거래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기분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귀찮아도 상품 설명을 자세히 쓰고,

물건을 보내기 전에도 내가 보지 못한 흠이 없는지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펴본다.

혹여 내가 올린 사진과 설명을 보고 구매한 사람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나 전자제품 등의 기기를 팔 때는

유독 더 신경이 쓰인다.

‘잘 작동되던 것이 갑자기 안 되면 어쩌지?’

나도 모르게 안 해도 될 이런 걱정까지 하며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학생마냥

물건을 보낸 후 구매자의 평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얼마 전 새 에어팟을 생일 선물로 받게 되어

미국에서 구입해 사용해 왔던

오래된 에어팟을 당근마켓이 올렸다.

하루도 안 되어 사겠다는 연락이 와서

기분 좋게 택배로 보냈는데

물건을 받은 구매자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내가 보낸 에어팟이 짝퉁 같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못 믿겠다니 환불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지만

졸지에 사기 친 사람이 된 것 같아 답답하고 화가 났다.

한국의 매장에서 AS를 맡긴 적도 있다고 해도

본인이 직업상 에어팟을 많이 구매해 봤는데

박스에 새겨진 각인이 다르다나.

마음 같아선 함께 매장에라도 가서 정품 확인받고

“이봐요, 난 사기 치는 사람 아니라고요!”

면전에 대고 큰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채팅 창에 허공의 메아리 같은 항변밖엔 할 수 없었다.

결국 난 그 사람의 의심을 풀지 못한 채

환불을 해 주고 물건을 돌려받았다.


단돈 이만 원 벌자고 사람을 속이겠냐고

혼자 열불을 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로를 아는 사이에서도 신뢰를 쌓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그냥 좀 믿어 달라고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었나 싶다.


전 사기 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이놈의 사회가 당최 남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곳인걸

생면부지의 나를 믿어 주지 않았다고 해서

어찌 당신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치만, 택배까지 착불로 보내왔을 때

순간 욱하고 인류애가 사라질 뻔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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