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헌 Sep 20. 2024

죽음은 축복이다! 죽음만이 나의 삶을 되돌려 줄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다. 죽음은 슬픈 작별이고 피해야 할 주제 같다. 또한 지금 당장 와닿지도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외면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말이다.


  로버트 그린은 '전쟁의 기술'에서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죽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우리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한 우리 마음은 잠시 편해질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시간은 무한하다는 환상을 갖게 되고, 일상생활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게 된다. 결국 우리는 직면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만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의 전사로서, 당신은 이러한 동력의 방향을 바꾸어놓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도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아라. 우리가 살아갈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날들을 반쯤 잠든 채로 마지못해 흘려보낼 것인가? 아니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죽음을 일상에서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지금 생각할 필요 없는 쓸데없는 주제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죽기 때문에 살 수 있다. 죽음을 명확히 인지해야만 사람은 시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더욱 노력하고 행동할 수 있다.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은 오히려 삶을 갉아먹는다. 그것은 나태함을 만들고 삶을 안주하게 만든다. 우리는 환경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삶이 무한하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을 뭐 하러 귀찮게 지금 끝내는가? 100년 후에 해도 되고, 1,000년 후에 해도 된다. 왜냐하면 나는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히 산다고 행복하지도 않다. 셸리 케이건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영생은 최고 형태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면 사람은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며, 기억, 욕망, 취향 등을 주기적으로 바꿔도, 심지어 기억을 주기적으로 삭제해도 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히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영생이 갈망한 가치는 결국은 악몽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영원한 삶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삶에서 영생은 없으니 이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엄청나게 여유를 부리고, 엄청나게 시간을 낭비한다.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만일 살아갈 날이 일 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혹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제 서야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을 찾고 내가 진실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소환한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왜 지금 하고 있지 않는 것인가?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하는 진정 소중한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왜 자꾸 뒤로 미루는가? 도대체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후회를 할까? 소중한 가족들과 충분한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했던 것들 말이다. 지금 걸어가지 않으면 그 길은 앞으로도 없을지 모른다. 부모님은 절대로 내가 여유로워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고, 지금 미루는 일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그 끝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던져준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삶의 고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부모님도 나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생각하라. 지금 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후회할 것임을 생각하라. 그러면 짜증 나고 귀찮아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축복이며, 삶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져라.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셸리 케이건은 말했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삶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은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죽음.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 죽음은 나의 운명이다. 우리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나에게 오는 그것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의 삶으로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죽음을 용기 있게 마주 하라. 죽음이 나의 삶을 되돌려 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름길은 없다. '과정'이라는 인생의 유일한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