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에서 이겼을 때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스스로 학습한 인공지능(AI)이 바둑에서조차 인간을 넘어선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사람들 사이에선 AI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을 AI가 잠식 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결국 인간의 영역은 예술, 스포츠 분야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런데 알파고 이후 겨우 5년 만에 예술도 AI가 잠식을 시작했다. 2018년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AI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약 5억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었다. 또한 2022년 8월에는 미국의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서 한 게임제작자가 미드저니라는 AI가 그린 그림으로 1위를 수상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드저니는 그리고 싶은 그림을 텍스트로 설명하면 그것을 1분 안에 그려준다. 1위 수상을 할 정도이니 당연히 퀄리티도 상당하다. 사람이 이정도 퀄리티의 작품을 그리려면 2~3주는 족히 걸릴 것이다. 반면 AI는 이런 그림을 하루에 수십장도 뽑아낼 수 있다.
AI그림 생성기도 줄줄이 발표되고 있다. 특정 화풍을 따라하는 AI도 등장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마추어 그림작가들은 진로를 포기하고 있고, 일반 작가들은 아직 AI가 정교하게 묘사하지 못하는 손발을 그리는 분야로 밀려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AI는 글도 쓴다. 이미 몇몇 뉴스의 경우 AI가 쓴 기사를 송출하고 있다. 단순 기사를 넘어 의견을 담은 칼럼을 쓰는 경지까지 올라섰다.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AI가 쓴 장편소설이 등장 했다. 소설을 쓰는 AI는 전 세계의 수십만권의 소설을 순식간에 읽고서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스포츠 분야도 서서히 AI가 침투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 저예산 팀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스카우터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저평하된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결과는 아메리칸 리그 최초 20연승과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자 다른 팀들도 앞다퉈 이를 도입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AI야구 심판을 실험중이고, 한국야구위원회는 2024년부터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해줄 AI심판 도입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AI심판이 오프사이드를 잡아냈다. 이번 대회 우승국인 아르헨티나는 사우디와의 1차전에서 2대 1로 패배했는데, 2골이 오프사이드 때문에 취소당했다. 육안으로는 거의 구분할 수 없는, AI만이 가능한 판정이었다. 변화의 속도가 이렇게 빠르니, 언젠간 사람이 하는 운동 경기에도 AI가 침투하지 말란 법은 없다.
특히 AI시대에 이미 전문직은 가장 위험한 직업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의사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의사는 각종 기기가 검사해준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한다. 사람이 하기 때문에 오진도 발생한다. 그런데 2019년 5월, AI가 폐암 진단에서 94.4%의 정확도를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는 전문의보다 5~11% 높은 정확도를 보인 것이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도 AI가 전립선암에 인간이 만든 기준보다 더 높은 예측 정확도를 보였다고 공개했다.
여기까지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는데 앞으로가 더 무서워진다. AI의사는 전 세계의 모든 의료 데이터를 짧은 시간 내에 학습할 수 있다. AI 암 의사의 경우 전 세계 환자의 암 정보를 모두 학습할 것이다. 그러면 정확도를 거의 100%에 수렴할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질병이나 신약같은 최신 의학 정보도 발표가 되는 즉시 업데이트 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사람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AI변호사나 AI판사도 마차가지다. 지금까지의 모든 판례를 짧은 시간내에 분석할 수 있다. 수시로 바뀌는 법도 바로바로 업데이트 된다. 모든 증거자료도 모순 없이 바로 분석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만큼이나 결과는 뻔할 것이다.
다른 분야는 어떨까? 음악은? 디자인은? 건축은? 교육은? 최근 인공지능 chatGPT의 등장으로 검색은 물론이고, 창작작업, 심지어 동영상 제작까지 채팅으로 해결가능한 일대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과연 AI로부터 안전한 분야가 있기는 한 것일까?
그런데 아직도 끝이 아니다. AI는 인간이 해왔던 영역 뿐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영역까지도 넘어서려 한다. 만일 ‘나’라는 사람을 나보다 AI가 더 잘 안다면 어떨까? 그런 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이것도 이미 진행형이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과거에 무엇을 좋아했는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잘 안난다. 그런데 AI는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동공이 확장되고, 심박수가 빨라졌는 지, 데이터는 수치화 될 수 있다. 책을 볼 때도 어떤 문구에 감동받고 인상깊어하는지, 심박수와 혈압의 수치를 통해 바로 파악할 수 있다. 나의 일상 생활 모든 것이 저장되고, 데이터화 된다면 AI는 누구보다 우리를 잘 분석할 수 있다.
그러면 나의 지금 기분 상태가 어떤지 체크한 AI는 내가 그동안 어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위안을 얻고 감정 상태를 변화시켰는지 분석해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들은 모든 노래들 중에서 최상의 노래를 들려줄 것이다. 그중에는 내가 지금은 잊고 있었던 노래까지도 들려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노래를 즉석에서 만들어줄 수도 있다. 또한 AI는 내가 필요로하는 적절한 책의 구절을 읽어주거나 과거에 읽은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찾아줄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우리는 이미 네비게이션이 훨씬 효율적으로 길을 안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육감은 좌회전을 해야하는데,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네비게이션은 우회전을 안내한다. 이럴 때 육감을 믿고 좌회전을 했다가는 교통체증에 빠져 시간 약속에 늦을 것이다. 우리는 정확도가 점점 높아지는 네비게이션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의 장래를 결정하거나 중요한 결정사항을 판단하는 영역에도 적용될 것이다.
AI는 당신이 축구 선수가 되는데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고, 헬스트레이너를 추천할 것이다. 혹은 변호사의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건축가를 추천할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모든 분석데이터를 뒤로한 채, 네비게이션의 방향을 무시하고 내 직감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AI가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도 우리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생활도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이 우리가 맞이할 세상이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 가치가 위협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인공지능 모델을 디자인하고 훈련한 주체는 인간들의 생각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AI보다 잘하는 새 일을 창조하기 위해 고민 할 것이다. 혼돈의 시대에 항상 그랬듯이 결국 생각하는 사람이 이 불안정의 길에 선두에 설 것이며,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생각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는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다른 세상이 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결국 우리의 머리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