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끊임없이 감정 영역의 원을 그린다

타인의 고통을 껴안지 않을 경계선 & 가장 작은 원의 폭력성

by 정헌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그 원은 감정의 경계선이며, 나의 마음 영역이다.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고향, 우리 모임, 우리 회사, 우리 팀, 우리 지역, 우리나라, 심지어 우리 지구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분류를 한다.


인간은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영역 동물이다


같은 원 안에 있는 대상에게는 한없이 친절하다. 원 안은 감정 우뇌의 영역이며, 함께 소통하고 공유하며, 교류하고 지켜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원 밖의 상대에게는 매우 적대적이다. 원 밖은 감정 좌뇌의 영역이며, 경계하고 대결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다.


이 힘은 매우 강력해서 원 안의 사람에게는 인류애를 느끼고 적극 도와주기도 하지만 원 밖의 사람에게는 전쟁을 통해 학살까지 할 수 있다. 원 안의 강아지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 원 밖의 말벌은 불태워 박멸하기도 한다. 원 안의 고양이는 조금만 고통을 느껴도 안쓰러워하고 걱정하는 인간이, 원 밖의 참치는 칼로 온몸을 해체하는 영상을 함께 공유하며, 입맛을 다신다.


따라서 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원의 위치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반칙을 한 상대에게 화를 내고 달려드는 건 상대 팀이 원 밖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반면 넘어진 상대를 일으켜주고 위로해 주는 건 같은 스포츠 선수라는 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상황도 원의 영역에 따라 다른 행동을 만드는 것이다.


원 안의 연인이 원 밖으로 나가면 우리가 어떻게 돌변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에서 저주의 존재로 극과 극으로 위치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원은 강력하며 나의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강력한 마음의 영역 동물인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원은 매우 다양하다. 수많은 경우에 수많은 원을 만들고 있으며, 때로는 각 원의 크기가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는 우리 반이 너무나 중요했지만 졸업하면서 잊히기도 하고, 친했던 친구들이 흩어지기도 한다. 회사를 옮기면서 원이 바뀌기도 하고, 국적을 바꾸기도 한다. 감정의 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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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정 영토를 위해 더 큰 원을 그려라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원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원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포괄할 수 있는 대상도 작아진다. 인간에 대한 원이 작다면 다른 인종이나 다른 종교, 다른 문화에 대해 매우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의 수많은 갈등이나 분쟁은 충분히 크지 못한 원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래서 민주적 조정이나 타협은 사실 원을 넓히는 과정의 일환이다.


이 넓은 세상에 좁은 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원 안에 가두는 것이며, 공감 능력의 한계를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더 넓은 원을 그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감정을 통제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원을 계속해서 넓혀나가는 작업이다. 수많은 대상들이 원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어 감정적 포용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자, 실제로 나의 마음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다.


이 원을 보통 그릇이라고도 표현한다. 큰 원을 가진 사람은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큰 원을 만들어나가자. 마음의 영토가 넓어지면 더 친절하고 광활한 나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떠안지 않을 경계선


더 큰 원을 그릴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생명체에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감에는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타인의 고통을 떠안지 않는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매우 강력한 마음의 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도한 공감은 스스로의 마음에 또 하나의 괴로움을 만든다. 과도한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으로써, 사실상 다른 사람의 고통을 떠안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고통을 받는 그 사람과 같은 괴로움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통의 분담이 아니다. 고통의 복제다. 이것은 고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공감은 상대를 위로하고 일으켜주기 위함이지, 함께 무너져 내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타인을 공감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떠안지 않는 선을 그어야 한다. 공감은 동화되는 것이 아니다. 공감에는 나를 해치지 않을 경계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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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공감은 나의 감정을 소진시키고, 나를 해치는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진정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비, 마음의 평정은 선 안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진정한 마음 기술이다.


가장 작은 원의 폭력성, 그곳에 가족이 있다


원 안쪽은 기본적으로 공감의 영역이다. 그런데 가장 작은 원은 역설적이게도 폭력성을 띄기도 한다. 마치 극단과 극단은 연결된 것처럼 가장 바깥의 원처럼 폭력성을 보이는 것이다.

가장 안쪽은 너무 작은 원이어서 사실상 나와 동일시되는 영역이다. 나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듯이 나처럼 편하게 막 대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가족이 있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많은 다툼과 상처가 생겨나는 곳이 가족이다. 가장 사랑하는 공동체이지만 그곳이 내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면 구성원들은 화를 낸다.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수많은 폭력이 가정 안에서 일어난다.


특히 아이들은 동일시가 심하면 부모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겠지만 실상은 스스로의 원을 그리지 못하고 부모의 원을 공유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이후에도 크고 건강한 원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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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가족들이 아무리 가까워도 그것이 마지막 원이어서는 안 된다. 그 안에는 각각의 가족 구성원별로 고유의 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구성원들의 원이 들어설 수 있도록, 가족의 원을 너무 작게 그려서는 안 된다.


결국 마지막에는 오로지 ‘나’라는 최후의 원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하나의 생명으로써 온전히 홀로 설 수 없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 원마저 모두 하나로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감정의 원을 그리는 데에도 깨달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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