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안 하냐고? 네가 지금 대신해주고 있으니까

가정생활의 문제들

by 정헌

MZ세대를 이야기하면서 자녀들의 감정 좌뇌를 대신 사용해 주는 부모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부모가 대신해서 감정을 표출하면 자녀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고, 자신의 감정을 의탁한다. 그리곤 자신의 감정 사용에 미숙하게 된다. 이에 따라 좌뇌가 긴장한 상태를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한 회피형 인간이 양산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자녀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어디서든 누군가 감정을 대신 사용해 주면 당사자는 감정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누군가 화를 대신 해소해 주는 것을 알고 있다. 신입 사원 때문에 화가 난 부장님을 대신해 과장은 자신이 똑바로 교육시키겠다며 신입 사원을 부른다. 그러면 부장님은 잘 알아듣게 얘기하라고만 말하고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자신이 감정을 과장이 대신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는 한호열 상병이 일부러 후임들을 구타하는 소리를 연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참들이 폭력을 행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화를 냄으로써 다른 고참들이 관여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면 악독한 고참들도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남들이 볼 수 있게 일부러 화를 내는 것은 그들의 감정을 대신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본능이다.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감정을 대신 해소해 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신 사용해 주는 감정의 문제


이처럼 누군가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하면 다른 사람은 관여할 필요성을 적게 느낀다. 이 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원리를 우리의 가정사에 대입해 보자.


가정 내에서 가장 큰 충돌 중 하나는 고부 갈등이다. 만일 아내가 시부모에 대한 불평을 강하게 늘어놓는다면, 이는 매우 강력한 감정적 관여로 느껴진다. 남편도 시부모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아내의 강한 감정 분출 덕분에 남편의 감정이 작동할 필요성을 막아버린다. 남편은 자신의 부모에 대한 감정을 아내가 대신 사용해 주었기 때문에 자신이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동시에 자신의 부모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는 공간을 열어주어 부모를 옹호하는 것이 더 쉬워진 것이다. 그래서 아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으려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자식 교육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아내들은 지나친 감정을 쏟는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남편의 무관심으로 이어지며, 남편이 관여할 공간을 막아버린다. 엄마의 잔소리에 시달린 아이에게 똑같이 잔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아빠는 거의 없다.


이것은 밸런스가 깨진 것이다. 누군가 과도하게 관여하면 상대방은 들어갈 감정의 공간이 사라진다. 이것은 아내의 감정적 작용에 대한 남편의 반응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은 넘겨주고, 타인의 일은 책임지고


그래서 밸런스가 깨지면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서 과도하게 관여하거나 소극적이 된다.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의 저자 해리엇 러너는 이를 지나친 역할 수행자와 미흡한 역할 수행자로 구분했다. 한 명이 지나친 역할 수행을 하고 다른 한 명은 미흡한 역할 수행을 하는 패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아내가 의존적이면 점점 자기의 역할을 침해당하고 남편이 아내의 문제를 대신 해결하고 결정하게 된다. 반면, 아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남편은 자신의 역할을 아내가 대신하는 것으로 느껴 점점 무관심해지고 입을 다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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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집안일에 대해서, 자녀 교육에 대해서, 가정소비에 대해서, 가족들의 감정 반응에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 수행자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지나치게 통제하려고 한다. 심지어 자녀들의 감정까지도 해결하기 위해 지나치게 개입한다.


집안일을 남편이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나친 역할 개입을 통해 남편이 나름의 방식으로 능숙해지는 기회를 가로막는다.


자신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수동적이 되고 더 이상 자신의 일이 아니게 된다.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 되어 버린다. 그것은 능동적인 사장이 아니라 수동적인 알바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외의 일들에서 여성들은 대부분 미흡한 역할 수행자가 된다. 여성다움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의 영향으로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밀어붙이는 데 소극적인 여성들이 많다.


미흡한 역할 수행자가 되면 앞서 말한 남자의 예시와 정반대가 된다. 정작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판단을 못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해리엇 러너는 이에 대해 상대방에게는 자신이 해야 할 역할 이상의 것을 베풀면서 막상 자기 자신과 관련한 결정이나 선택에 대해서는 확실한 판단력이 없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일에는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자신에 대한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 갈등을 피하는 소극적인 역할 수행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여자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더 많이 분노한다.


그럼에도 이런 일들은 남녀 모두에게 발생하며, 남녀의 예시를 각각 뒤집어서 상대에게 적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상대를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가정에서 이토록 감정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개입하는 것은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인간의 방어 기제에 대해서 살펴봤다. 인간은 감정으로 소통하며, 대부분의 잔소리가 쓸데없는 이유는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따라서 우리는 원하는 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감정, 생각, 행동에 대해 책임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결코 모든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다. 더 정확히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러려면 개입을 줄이고 덜 민감해지면서 나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에 대한 걱정 에너지를 자신에 대한 집중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니 상대의 감정을 바꾸고,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그 대상이 자식일 때는 특히 어렵겠지만, 그래야만 한다. 그들의 감정을 부모가 대신 해소해 주어서는 안 된다. 해리엇 러너의 말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자기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필요할 때는 도움도 요청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부모가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끔 해준다면, 그들은 실제로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떠안아 그것을 자신의 고통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각자는 고유한 감정의 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 그것을 파괴했을 때는 부모의 삶에도 아이의 삶에도 도움이 안 된다. 모두가 괴로워지는 방법을 선택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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