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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스하다 Sep 30. 2024

[두개의 동상]②‘민립’ 인하대학생들, 이승만동상 철거

[뉴스하다]민주화운동이자 400명 참여한 거사였다

정부와 여당의 ‘이승만 띄우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나오고 공영방송 KBS는 광복절에 이승만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영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서울 한 복판인 용산공원에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3대 역사기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했다.


심지어 독립기념관장까지 뉴라이트 인사가 차지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김문수 고용노동부장관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국민들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주장한다.


바야흐로 ‘친일파’ 전성시대다.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다. 이들은 친일파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뉴라이트라는 탈을 썼다. 지식인인척, 친일행위를 물타고 있다.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 7월 9일(현지시각) 미국 방문 첫 번째 일정으로 이승만이 설립한 한인기독교회를 찾았다.


김 씨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머나먼 타지에서 이토록 애쓰셨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잊혀진 위업이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영방송이 ‘이승만 건국대통령’, ‘건국절’ 등 뉴라이트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지금 인천에는 이승만이 인하대학교 설립자이면서 건국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인하대학 내 동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뉴스하다는 이승만을 인하대 설립자로 볼 수 있는지, 독립운동가가 맞는지, 인천에 이승만 동상 건립이 타당한지 등 다각도로 분석했다.


인하대 설립자 이승만 아닌 ‘민립대학’


‘이 대학은 국립이나 공립보다도 하와이 동포의 국내 동포와의 합작으로 성립된 재단으로서 설립되는 것이다.’


‘인하대학은 하와이 교포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던 한인기독학원을 매각한 대금 15만불을 기금으로 하여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됐다. 한인기독학원의 설립, 운영이나 인하대학의 설립에 있어서 이승만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하와이 교포의 성금과 1950년대 국민의 성금이 결합되어 있었다. 하와이 민족운동의 정신과 국내외 동포의 성금이 결합되어 있는 점에서 인하대학 설립은 거족적, 민족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1954년 2월 문교부에 제출한 인하대 설립취지서 핵심 내용과 1999년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의 논문 <하와이 이민과 ‘인하공과대학’의 설립>에서 인하대 설립 성격을 평가한 대목이다.


이 논문과 설립취지서를 종합하면 인하대는 이승만이 설립한 학교가 아니라, ‘민립대학’ 성격이 강하다. 

인하대 설립취지서. 인하대학교 50년사.



인하대에 이승만 동상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가 학교의 설립자라는 근거가 따라 붙는다. 


1952년 12월 중순 이승만이 피난지 부산에서 김법린 문교부장관에게 인천에 공과대학 설치를 지시하면서 인하대 설립이 시작됐다는 것.


그러나 인하대 설립 배경을 보면 정부에서 설립을 주도했다고 해서 이승만을 설립자로 국한할 수 없다. 인하공과대학 설립취지서에 나와있듯, 이 학교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뜻과 정성이 모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하대 설립은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됐다. 1953년 <인하공과대학 설립기성위원회 발기취지서>에는 ‘하와이 동포들은 고국을 떠났던 50주년 기념사업으로서 그 옛날 최후의 발자취를 남긴 인천에 공과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학교 설립 기본금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을 매각한 15만불이였다. 한인기독학원은 사탕수수밭 노동자를 비롯한 하와이 교민들의 기부금을 기초로 운영됐다. 


이승만은 이러한 하와이교포들의 기부금을 토대삼아 모든 동포들에게 학교설립 기금 기부를 요청했다. 


인하대학 운영을 위해 설립할 재단법인 인하학원의 재원은 총 515만불(3억 903만환)로 계획되었는데, 하와이교포 기부금 15만불(900만환), 국내민간 기부금 100만불(6천만환), 정부보조금 100만불(6천만환), UNKRA·UNCAC·한미협회 등 외국 원조기관 원조금 300만불(1억8천만환), 기타 잡수입 500불(3만환) 등이었다.

인하공과대학 설립기성위원회 설립기금 조성계획. 인하대 50년사.


실제 걷힌 국내 민간 기부금은 기업체, 정부산하 경제단체, 개인 독지가 등이 2천734만여환을 냈고, 정부 각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 봉급에서 5%씩 갹출한 것이 103만여 환이었다.


인천시도 인하대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인하대학교동창회 50년사>는 학교 설립 부지를 인천시로부터 기증받았다고 기록했다.


‘학교 설립의 부지는 용현동과 학익동에 걸쳐있는 시유지 12만5천여 평을 1954년 2월 1일 인천시(시장 표양문)로부터 기증받았다. 학교 설립의 부지는 이승만 대통령이 몇몇 후보지를 직접 방문 답사하여 최종적으로 확정한 곳이었다. 기증된 부지는 대지 6천180평, 밭 6만8천441평 151필, 논 2만6천97평 48필, 임야 2만4천455평 21필지 등이었다. 이를 당시 시세로 환산하면 약 1천713만환이었다.’

인하공과대학 개교 시절 모습. 인하대.


이러한 거족적 참여가 있었기에 인하대는 이승만이 아니라 우리겨레가 힘을 모아 설립했다고 봐야한다.

1954년 문교부 장관 김법린은 대학 설립을 위한 국민들 참여에 대해 이렇게 담화를 발표했다. 


“그동안 본 대학의 재단 확립을 위하여서는 하와이 동포들의 눈물겨운 기부금 15만불과 정부보조금 100만불 및 인천시 기증 교치 12만여 평을 필두로 정부 각 부처와 산하 공무원의 갹출금, 대한중석주식회사·화신산업주식회사·대한금융단 등 각 기관, 전국 방방곡곡으로부터의 기부금 등 총액 2천700만환이 넘는 거액이 단시일 내에 수집되어 이제 2억 5천만환의 재단을 구성하게 된 것을 우리 교육사상에 일즉이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성사로서 우리 교육기관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치하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일부 운동권’에 의한 동상철거? 학생 400명 거사

인하대학생들이 이승만 동상을 끌어내린 건, 민주화운동이자 수백 명이 참여한 거사였다.


이승만 동상은 1979년 2월 인하대 교내 호수 인경호 북쪽에 높이 6.3m(좌대 3m 포함)로 세워졌다.

1979년 2월 23일 이승만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는 내용이 실린 인하대학신문 기사. 이창호 기자.


이 동상은 이승만의 독재와 친일 논란 등으로 1983년 10월 학생들이 쓰러뜨렸다. 이후 제자리에 복원했지만 1984년 11월 2일 학생들이 완전히 끌어내렸다.


이승만 동상 철거 소식은 언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에는 전두환 정부가 철저히 언론을 통제했다.

‘민간인 학살’까지 저지른, 같은 처지의 이승만 동상 철거 소식은 전두환에게 달갑지않았을 것. 뉴스하다는 <인하대학신문>에 기록된 기사를 찾아냈다. 


1984년 11월 2일 열린 제1회 서클제 소식을 전하는 11월 5일자 학보에 실린 내용이다. 이승만 동상 철거 뉴스 한 줄을 남기기 위한 학생들 노력이 역사로 기록된 것.


‘폐막식이 끝나자 400여 명의 학생들은 횃불을 들고 교내를 시위 행진하며 이승만 동상을 쓰려뜨렸다.’

인하대학생 400여 명이 횃불을 들고 교내 시위 행진한 뒤 이승만 동상을 쓰러뜨렸다는 내용이 담긴 인하대학신문. 이창호 기자.


이승만 동상을 쓰려뜨리려는 학생들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는 당시 이를 저지하려 했던 총동창회장과 학교 관계자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동상이 철거될 당시 11대 인하대총동창회장을 지난 이종우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인하대학교 개교 70주년 학술심포지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동창회장할 적에는 동상 끌어내리는 것 갖다가 총장님을 모시고 와라. 그리고 학생회장들을 거기 관련된 놈들 다 나와라. 그래서 광장에다 모아놓고 동창회장을 했던 친구들과 부회장 한 셋이서 열심히 후배들을 타일렀습니다. 그랬더니 즉석에서 동상을 다시 세웠습니다. 세우는 것을 보고서 갔는데, 며칠 있다 보니까 또 없어졌어요.”


1984년 5월 16일 <경인일보>에 실린 ‘學生(학생) 소요 단호히 대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학교는 ‘지난 축제기간 동안에 있었던 일부 학생들의 소요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앞으로 강경하게 대처하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기록과 동문들의 구술에 따르면 동상 철거 시도는 1983년 10월과 1984년 11월을 비롯해 수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인하대가 학생들 소요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내용이 실린 경인일보 기사. 홍봄 기자.


총무부처장, 대외협력부처장 등으로 인하대에 있었던 김도현 인하체육인회 회장 역시 학생들의 끈질긴 동상 철거 시도를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인천지회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하대 학생과장을 오래하면서 제가 주사파 그놈들이랑 무지하게 싸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쓰러트리기 전에 학교 교수, 직원, 학생 해가지고 20여 일을 밤에 보초를 섰는데. 그 당시에 딱 끝나면서 (철거를) 바로. 운동권이 하겠다면 목숨걸고 끝까지 했습니다.”


이승만 동상, 조형물로 선회했지만 우상화 논란 여전

올해는 인하대 개교 70주년이다. 총동창회에서는 70주년을 맞아 이승만 동상을 재건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이라 주장하는 단체와 지역 인사들도 동상 재건 주장에 힘을 보탰으나 반대가 거셌다.


학교 구성원과 지역사회의 반대를 의식한 총동창회는 동상 대신 이승만 사진이 포함된 조형물을 설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사실상 70주년 맞이 동상 재건을 포기한 것이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총동창회에서 공개한 조형물 예상도를 보면 동상에서 벽 모양의 조형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이승만을 부각 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동상 대신 추진 중인 조형물. 이승만 사진이 들어갈 예정이다. 연합뉴스.


이 예상도의 조형물은 인하대 정석학술정보관 남측에 조성하는 ‘하와이-인하 공원’에 가로 18m, 세로 3∼6m 크기의 벽면 형태로 설치할 계획이었다. 이승만이 인하대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 초대 학장에게 교기를 전달하는 사진이 지름 3m 사이즈로 넣으려했다. 이승만 사진에 비해 미국 하와이 교민들의 사진 등 인하대 창학역사를 담은 사진은 가로·세로 1.5m 사이즈로 작았다.


이승만 우상화라는 지적까지 나오자 인하대는 결국 지난 6월 계획했던 기공식을 취소했다. 


조형물 설치가 무산된 것은 아니다.  총동창회는 반발을 최소화 하면서 조형물을 설치 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승만 사진과 하와이 교민 등의 사진 크기를 조정하거나 재배치하는 등의 안을 두고 내부 논의를 거치고 있다.


조형물을 설치하려는 하와이-인하 공원 조성 공사는 이미 시작된 상태. 학교측은 이승만 사진이 들어간 총동창회의 조형물과는 별개로 공원을 단장하고 학교 자체 조형물 설치를 추진 중이다.

 

아직 인하대에는 이승만 기념물이 남아 있다. ‘우남호’와 ‘우남로’다.


우남호는 1971년, 비행기록 총 3만6천216시간을 보유하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대한항공(KAL)을 세운 조중훈 인하학원 이사장이 1974년 인하대에 보존, 전시, 교재 등으로 영구 기증했다.

우남호. 이창호 기자.


인하대는 이 비행기에 이승만의 호를 붙여 우남호라고 이름을 지었고, 역사적 기념물로서 의미를 두고 캠퍼스 중심에 전시하고 있다.


옛 정문에서 도서관, 하와이 교포기념관(체육관), 학생회관광장, 비룡탑, 인경호를 잇는 길이 260m, 폭 6m 도로에도 이승만 호를 붙여 ‘우남로’를 기념하고 있다.

우남로. 이창호 기자.


기념물에 이승만이 생전에 쓰던 호를 붙이는 것, 이 또한 우상화이다.


인하대는 이승만 우상화 기념물과 함께 흉물로 방치한 이승만 동상 받침 철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승만과 관련한 논란의 불씨는 언제나 살아있을 것.


[이 기사는 뉴스타파함께재단 KINN(한국독립언론네트워크) 탐사보도 기획안 공모전 취재비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창호 기자 ych23@newshada.org

홍봄 기자 spring@newshada.org


〈영상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FRcQ8Na5otM

〈기사보기〉

https://newshada.org/2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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