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대리사회가 수렁은 아니다/대리인간의 일환/통제 속의 존재
나는 누구인가?
‘대리사회’를 읽고
지구상에 존재한 모든 피조물은 우리의 것이 아닌 조물주로부터 무상 임차한 것으로 믿는 것이 타당하다고 최소한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만 조물주가 바라보는 시각은 지구라는 프레임에 갇힌 ‘우리들’이란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대리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안타까움이 내포돼 있다. 그나마 나의 충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결국 ‘대리만족’에 불과하다. 대리사회를 발간한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 공감대가 형성하는 일상적인 사회의 맥락을 대리사회로 구체적이고 진솔한 경험담을 소신 있게 집필했다. 대리사회를 읽으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자신을 돌이켜 지난 과거와 현실을 생각하게 했다.
대리사회가 수렁은 아니다
나를 반기는 용역회사
40대 접어들면서 내가 운영하던 장사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라는 막연한 고민 끝에 ‘취직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해보고 싶은 것은 있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젊은 나이라면 배우면서 일한다고 하지만 40대 접어든 나이에 ‘일 가르치고 돈 준다’는 곳은 극히 드물고 나를 원하는 곳도 거의 없었다. 이력서를 두 군데 제출했지만, 나를 반기는 곳은 용역회사였다. ‘안전 관리자를 모집한다!’라는 광고에 ‘초보자 환영’이라는 문구가 솔깃했다.
대리인간의 일환
‘을’에 불과한 대리인간
짐을 챙겨 용역회사에서 알려준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가 도착한 장소는 대기업에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현장이었다. 하는 업무는 대기업 안전 관리자 지시에 따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관리 보조 업무였다. 20대 가량으로 보이는 안전 관리자는 나를 ‘안전감시단’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대기업과 용역회사와 갑을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내가 현장에 투입한 것이다. 이른 새벽 5시부터 퇴근할 때까지는 안전 관리자 지시에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었다. 갑을 용역계약에 ‘나’라는 존재는 대리인간 ‘을’에 불과했다.
통제 속의 존재
대리사회에 귀속된 대리인간
최저임금이라도 벌기 위해 아파트 30층 높이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내려가는 순찰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했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안전감시단’한테 전가되기 때문에 어떠한 변명이나 명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두 번 겪으면서 ‘무사고 무재해’라는 구호를 외치고 현장은 마무리됐다. 근로자들은 안전하게 현장을 떠나는 데 그동안 겪었던 모든 일들을 생각하니, 아파트 현장 텅 빈방에서 나 홀로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대리사회에 귀속된 나는 2년간 ‘대리인간’임을 일깨워줬다. 이처럼 나의 삶은 대리사회의 ‘대리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