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안전관리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중국으로 파견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직원들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 업무는 파견 직원들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동행하며 숙소를 계약하고 돌아오는 일을 맡았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 2부, 비행기 값이 최고조로 달하고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로 공항이 붐비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이라 어렵사리 항공권을 구매하고 중국 동방항공기에 탑승했다. 가격에 비해 작고 비좁은 기내에는 오히려 중국인보다 한국인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륙하면서 12월의 뭉게구름 속을 헤치며 창공을 날으는 비행기는 고요하지 못해 기체가 흔들리며 비행하고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는 비행기 사고를 상상하며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다. 전에도 제주도에 가면서 저렴한 소형비행기를 타고 도착할 때까지 기체가 흔들려 불안감에 기도드린 경험이 있다. 그때를 상상하며 이번에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라며 회개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들어주신 덕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고 믿고 싶다.
도착지 광저우
동행한 일행 중 중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직원이 있어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도착한 목적지는 한국 대기업이 상주하고 있는 전자 회사였다. 길거리에는 마치 중국이 아닌 한국을 방불케 할 만큼 한국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연락한 중국의 부동산중개업자는 ‘중국에서 저렴한 숙소를 소개해 준다.’라는 말을 믿었는데 막상 중국에서 대답은 “저렴한 집이 없다.”라는 일구이언에 걱정이 밀려왔다. 도착한 당일은 어쩔 수 없이 인근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캐리어를 호텔 방에 놓고 주변 식당을 찾았다. 한국식당 간판이 눈에 띄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일행들과 삼겹살로 끼니를 때웠다.
당시 광저우 숙소의 인근 시장
다음 날, 부동산중개업자는 월세 아파트를 소개해 줬지만, 가격(한달, 한화 2백만 원 이상)이 만만치 않았다.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 가격을 제시했다. 중국 파견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원청에서 “숙소비를 추가로 지원해 주겠다”라는 제안에 부동산중개업자가 소개해 준 아파트에 입주했다. 계약을 체결한 숙소는 고급 아파트임을 알 수 있었다. 경비실을 통해 외출하면 우리나라 6~70년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직원들이 출근한 뒤에 나 홀로 아파트 주변을 맴돌다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를 보고 손짓으로 음식을 가리켰다. 알아차린 식당 업주는 기름에 튀긴 돼지고기와 물에 데운 채소, 그리고 백반을 가져왔다. 향신료에 예민한 나는 냄새와 맛을 살짝 보고 배를 채웠다. 그나마 먹을 만했다. 점심을 먹고 인근 시장을 돌았다. 노상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로 무슨 말을 전하는 것 같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숙소를 찾지 못할까 봐 거주하는 아파트를 시야에서 멀어지지 않게하고, 갔던 길을 또 가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세계 인구 순위 인도와 별 차이 없는 중국은 영토도 넓지만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숙소에 들어간 후 출근했던 직원들이 퇴근하고 들어왔다. 내일은 쉬는 주말이라 함께 짝퉁 시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광저우 짝퉁 시장
짝퉁 시장을 관광하는 일행은 쇼핑몰에 들어가 명품 브랜드 시계를 구경하고 있었다. 가격이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시계는 중국 화폐 몇 백 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가품이었다. 손목시계는 진품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게 정교했다. 광저우 짝퉁 시장은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말했다. 짝퉁 시장 거리는 한국인들이 많기도 했다. 일행들은 시계를 구입하고 함께 국숫집에 들어갔다. 주문한 국수는 향신료 맛이 입안에 진동했다. 비위가 약해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체질에 맞지 않은 중국 음식과 환경, 한국에서 먹었던 짜장면은 중국에서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중화요리인데…….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모국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내 고향 대한민국
어느덧 며칠이란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광저우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포에 떨면서 작은 동방항공기에 탑승하고 싶지 않아 비행기 티켓을 대한항공기로 바꿨다. 한국에 도착한 나는 좋은 추억이 없었기에 5일간 중국에 다녀온 기억을 한동안 잊어버렸다. 아니, 중국에서 추억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바쁜 일과 속에 추억을 묻어 두었던 것 같다. 동행했던 일행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오늘따라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