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별 Jun 01. 2017

감정과 행동

일상의 기록#14



#

내가 23살 정도 되었던 즈음에 고양이가 무척 키우고 싶었다. 우연한 계기로 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정말 심했다. 일단 일주일 정도 집에 두고 있으면 그래도 좀 정이 들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정말 심하게 반대하셨다. 고양이 사료값이나 예방접종 비용, 대소변 치우는 것이나 털 날리는 것 등등 많은 이유를 말씀하셨고, 그 이유에 맞게 내 나름대로 해결책을 말씀드렸지만 반대는 여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설득이란 설득은 다 해본 거 같았는데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계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서 그 당시의 일을 다시 돌이켜보니, 부모님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신 게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었던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나름대로는 설득이라고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부모님께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느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고양이는 지금 아빠의 친구분 가게에 귀여운 마스코트가 되었고, 사람을 많이 따르면서 이쁨 받고 지낸다고 한다. 


최근에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지른 적 있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볼 때 큰 실수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큰 실수였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편지를 써보기도 했고, 계속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23살에 고양이를 키우려고 부모님을 열심히 설득하던 내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하는 사과가 과연 진정 누굴 위한 사과일까 하고 말이다. 사과를 받아달라고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 마음이 편하자고 사과를 강요하는 건가 싶은 마음도 나 스스로 들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 친구에게 다시 사과를 했고 사이가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두 가지 경우를 종합해 봤을 때 생각에 감정이 개입하게 되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참 어려웠던 거 같다. 첫 번째 경우에는 간절함이 있었고 두 번째 경우에는 미안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것조차도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지니고 있는 본능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순간들이 찾아올 때마다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항상 고민이지만 감정에 기반한 행동을 해도 조금 시간을 두고 감정을 진정시키고 행동하는 것도 옳고 그름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떤 행동을 선택하더라도 책임을 지고 나아가야 하는 건 자신이니까.



#

감정에서 오는 생각 vs 생각에서 오는 감정

예전부터 궁금했던 점이 생각이 들어 감정이 따라오는 건지, 감정이 생겨서 생각이 따라오는 건지 궁금했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보고 싶게 된 건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지 말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감정에서 생각이 오고, 그 생각을 통해 또 다른 감정이 생긴다. 누군가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보냈고, 그 감정을 통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생각을 통해 그리움이 외로움이나 공허함 등으로 변이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감정이 끝에 다다를 때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보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해본다던지, 집 앞에 무작정 찾아가 본다던지 말이다. 이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우리는 '이성'이라는 걸 발휘하게 되는데, 감정과 이성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작정 집에 찾아가면 실례가 될 수 있으니 그러지 말자'라고 이성은 말하고, '보고 싶으니까 집에 찾아가야겠어'라고 감성은 말한다. 하지만 항상 키는 감정이 쥐고 있으니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극한의 분노나 우울 등이 찾아오면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감성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고, 이성은 다 큰 어른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와 지금의 내가 공존하듯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생각은 어디서 오게 되었는지 인지하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내가 감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지 혹은 너무 이성적으로만 행동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수많은 판단과 선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감성과 본능이라는 엑셀러레이트를 이성이라는 브레이크로 제어하는 상황 속에서 경험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레이스는 시작되었고 목적지가 어딘지 몰라 일단 남들이 가는 대로 뒤따라가기 바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본능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성이라고 하는 브레이크만 밟는다면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나아갔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지는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무엇이 더 가치 있고, 좋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감성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는 때가 있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있을 뿐이다. 그 판단의 기준은 개인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나중에 그 상황을 되돌아봤을 때 다르게 행동하면 어땠을까 싶다면 감성과 이성의 무게추를 조금 옮겨볼 필요는 있을 거 같다.

이전 18화 설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