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29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회를 이루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관계를 잘 유지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을 나의 주장이나 생각에 동의하고 따라올 수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어떤 초능력보다 값어치 있고 실용적인 능력이 아닐까. 최근 3일 동안 누나를 설득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결정으로 인해서 짊어지고 가야 하는 리스크, 역지사지, 다른 대안이나 방법들,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 등등 나름 설득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고 믿었던 나는 누나의 거듭되는 거절에 설득을 포기하기 이르렀다.
내용인즉슨 내년 7~8월까지 전세로 누나와 살고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을 당장 8월에 나가서 혼자 지내겠다고 통보를 받았다. 가까운 지인께서 임대아파트 분양이 되셔서 같이 집을 확인하러 갔다가 집이 마음에 들어서 그 집으로 이사를 가겠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고, 그렇다고 설마 진짜 일어나게 될 일이 아니겠지 싶어서 일단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다음날이 되자 본격적으로 계약금 마련을 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누나를 보고 아차 싶었다.
처음에는 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장 8월에 이사를 하면 나도 새로 집을 구해야 하고, 최근 큰 지출이 있어서 보증금도 마련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그 집으로 나가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의 의지는 확고했고, 세부적인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지금 키우고 있는 고양이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아빠 차를 출퇴근용으로 같이 사용하는데 혼자 멀리 나가서 살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누나가 따로 나가서 살게 되면 나에게 돌아오는 문제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며 설득했지만 생각을 더 해보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하던 누나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누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사를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혼자 살아보고 싶은지 등등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풀어나가 보려고 했다. 누나의 주장은 이러했다. 보러 갔던 집이 마음에 들고, 임대주택이라 기간에 상관없이 살 수 있으니 어쩌면 2년마다 전세로 이사를 다니거나 나중에 결혼을 해서 멀리 이동을 해야 하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으니 장점이 많다고. 게다가 혼자 살아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누나의 주장이 황당하거나 전혀 근거가 없는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누나가 생각하는 장점에 대해서 장점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 가려는 집이 방이 3개인데,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방이 1개를 사용하지 않는데 굳이 큰 집에 갈 필요가 있으며, 혼자 살게 되면 월세가 지금보다 2~3배 더 나오는데 금전적인 부담도 있고, 집이 더 좋은 곳이 필요하면 8월에 더 좋은 집을 같이 알아봐서 조금 더 지내는 방법도 있으니 누나가 생각하는 장점들이 그리 장점도 아닐뿐더러 더 좋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을 했다.
그런데 참 아니러니 하게도 누나를 설득하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다른 대안을 이야기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할인을 하니까 구매해놓고 나중에 필요할 거야 하는 느낌이 들었고 이유가 있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하고 이유를 만들어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말에 모순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는데, 혼자 사는 집에 방이 3개이고 월세도 부담이니 룸메를 들여서 월세 부담도 낮추면 빈방도 해결되고, 금전적인 부분도 해결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누나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렇게 되면 월세 부담도 줄어들고, 빈방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처음에 룸메를 친구들로 구해보겠다고 말을 했으나 누나가 룸메로 들이려고 하는 2명은 둘 다 회사 후배들이고, 이제 막 20살이 되어서 취직하게 된 초년생들이면서 둘은 친구였다.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나가는 사람이 월세가 부담이니 룸메를 구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룸메라는 분들이 회사에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라니.
마지막으로 감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오늘을 끝으로 더 이야기하지 않고 누나의 뜻을 존중해 주겠다고 언급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자기 8월에 나가겠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많이 당황스럽고, 나가게 되면 집도 알아보고, 여러 가지로 더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아져서 반대를 했지만 누나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더 나은 대안이 있으니 조금 더 충분히 생각해보고 결정해보면 안 되냐고 말이다. 지금 포기하면 가까운 지인과 룸메를 같이 하려고 했던 분들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되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면 나와 관계에서부터 다시 대출을 받거나, 이사하는 문제, 같이 사는 고양이, 출퇴근으로 사용하던 자동차, 금전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지니 최소한 내년 8월까지 지금 사는 집에 대해서 정리가 되고 결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타일렀다.
여차 저차 해서 당장 이사를 가는 것은 보류가 되었지만, 이제 내년부터는 서로 또 독립해서 살아가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누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참 여러 가지로 느끼는 것들이 많다.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전달되기 매우 어렵고, 나의 언행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내 생각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도 말이다.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누나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내 가치관에 혼란이 오기도 했다. 과연 내가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고 말이다. 누나의 삶에 내가 더 관여하고 결정하게 유도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설득이라고 하는 것은 내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앞으로도 많이 더 작용할 것이고, 비슷한 경험도 더러 하기도 했다. 삶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무던히도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일어나게 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앞으로도 설득을 내 삶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요리할 때 쓰이는 또 다른 모양의 칼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앞으로 또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또 설득은 하겠지만,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과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옳다고 보였던 결과들도 나중에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회를 이루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관계를 잘 유지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