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31
얼마 전에 집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 댁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엄마와 아빠로부터 독립을 결심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같이 저녁을 먹거나 시간을 함께 보내야지 생각했지만 평일에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난 뒤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한 번은커녕 한 달 내내 가지 않았던 적도 있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다.
독립을 결정했던 이유는 그리 대단하거나 거창하진 않았다.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고, 계속 집에 남아 있으면 부모님께 의지하고 기대려고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더 독립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고, 부모님께서도 이제 자식들을 케어하는 삶이 아닌 본인들의 삶을 사시길 바랬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내 주관이지만. 마침 누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부랴부랴 나와서 지내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 아이러니했던 부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진로에 있어서든, 어떤 것이든 꽤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께서는 생계를 유지하느라 바빠서 나에게 잘 신경 쓰지 못해서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신다. 대학교에 가지 않고 군대를 먼저 갔었던 이유도 그 당시에 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정확히 모르던 상황이라 군대를 가겠다고 선택을 한 건데 대학교를 보내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한 지붕 아래 2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가족들끼리도 서로의 속 마음을 정확히 모른다는 게 한편으로는 참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어쩌면 익숙해서 그랬던 것 일지도 모르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고 서툴러서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믿었던 부모님의 모습도 지금과는 거리가 꽤 멀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과 성격은 어쩌면 5년~10년 전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궁금하지 않았다.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져 왔었던 것들이 독립 이후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문득 엄마의 어렸을 적 꿈이 뭐였을까, 아빠는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은 생각이 조금 떨어져 지내보니 떠오르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부모님과 식사 자리에서 주로 대답만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대답보다 질문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엄마도 아빠도 20대를 겪으셨을 텐데, 처음 겪어보는 부모의 역할이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다.
이제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날 보다, 함께할 수 없는 날들이 더 길 테니 조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와 누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셨듯이,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는 방법은 함께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수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독립으로 인해서 나와 누나의 일상에서 부모님은 한 발자국 멀어지셨지만, 그 거리만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3년 전 독립을 결정했던 그 당시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이라며 했던 행동이지만, 지금 돌이켜본다면 그 선택이 분명 최선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독립을 하면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뀔 거라고 기대하며 나가야 하는 명분들을 하나둘씩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독립 이후에 내 삶을 이루는 많은 것들은 바뀌었지만, 본질적인 것들은 나의 생각보다 훨씬 변화가 적었다. 아니 어쩌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장 1년 뒤 누나와 살고 있는 전셋집 계약이 만료가 되어 앞으로 정말 다시 부모님과 살아야 하는지 조금 더 진지하고 현실적인 부분까지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 같다. 어떤 결정이 더 좋다고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옳다고 보이는 결정도 사실은 없다. 그저 선택한 결정이 덜 후회되도록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결정 이후의 삶을 어디에 맡겨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