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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Jun 21. 2017

엄마라는 단어의 무게

일상의 기록#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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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서 우리 할머니는 많이 아프셨고, 얼마 전 조금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많이 좋아지셨다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아무도 임종을 볼 수 없었고, 친구들과 여행 중에 급하게 서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은 이번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어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할머니의 사진이 제사상 위에 올려져 있다는 것 자체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일찍 도착하지 못해서 입관식에 참석하지 못했기도 했지만 어쩌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로 이어지는 장례식 일정을 모두 경험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은 장례식보다 결혼식을 더 많이 갈 것 같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많은 조문객들이 와서 조문을 해주시고, 위로를 해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억 속에 계시는 할머니를 보낼 준비는 아직 안되었나 보다. 눈물이 나질 않았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자꾸 외면하고 피해서 그런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여기서 울고 힘들어하면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이 더 힘들어 할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에 울지 말자고 속으로 수 없이 다짐했다.


지나갈 것 같지 않았던 시간이 지나 발인을 하는 날이 와서야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발인이라는 단어의 '발'은 씨앗이 싹을 틔울 때 쓰는'발아'의 '발'과 같다. 발인의 뜻이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집을 떠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개인적ㅇ로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피어나기 위해 싹을 틔우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화장을 하기 위해 화장터에 도착해서 운구를 화장터에 모셔두고 나와서 1시간 30분 정도 기다리니 화장이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확인을 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화장터로 향했다. 


이제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시는 할머니를 보고 모든 가족들이 울 수밖에 없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울지 않으셨던 고모는 엄마를 외치며 목이 쉬도록 울고 또 우셨다. 살면서 '엄마'라는 단어가 이렇게 슬프고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존재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더 많은 아픔과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장례를 치르며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다짐했다. 지금 옆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 겠다고. 그동안에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루고 거절했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의미하게 보내기도 했지만, 장례를 통해 삶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행복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첫사랑,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 누군가의 전부였던 다시는 볼 수 없는 우리 할머니가 가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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