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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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랜만에 친하게 지내던 동생을 만나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요즘 사귀는 사람과 관계에 대해서 고민이라고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른 부분은 다 마음에 드는데 가끔씩 거짓말을 티나게 해서 자꾸 의심이 들고 신뢰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말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말했듯이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하는 구절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모두들 헤어지라고 말하는데 정작 헤어지자고 말하는 게 무섭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두렵다는 그 친구를 보면서 예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예전에 회사를 그만두기 전 그만둔다고 말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엄청나게 두려웠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도저히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무서움이 동반했고,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올 수 없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에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친구의 여자 친구가 했던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만둔다고 말할 용기도 없으면 그만둘 자격도 없다'라는 좋은 말을 듣고 스스로 위안을 많이 얻었다. 용기를 조금 얻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두렵고 떨리는 중에 오히려 심플하게 생각했다.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 말고 일단 사장님 방문을 노크를 하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어렵게 어렵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용기 내서 할 수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이뤄나갈 수 있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두겠다는 말이 어려웠던 이유 같은 건 딱히 없었다. 내가 나 스스로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스스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선택했을 뿐이다. 왜 그런 두려움과 무서움을 선택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당시에 지내고 있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뛰어드는 것에 내 마음이 필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나는 그 동생에서 헤어지라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을 해주었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동생의 몫이니 더 이상 헤어짐을 강요하진 않았다. 다만, 적어도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필요에 대해서는 꼭 당부했다.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지금 만나느 사람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무섭고 두렵다고 참고 회피하면 결국 그 상처가 회복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용기를 내라고 말해준다고 용기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용기를 좀 내볼필요가 있겠구나' 정도의 느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서 가방에 있던 '미움받을 용기'를 꺼내서 읽어보라고 책을 선물해줬다. 동생이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관계가 더 깊어질 수도, 혹은 단절이 될 수도 있지만 이런 고민으로 더 이상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어질 거 같다. 말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는 그 용기로 인해서 분명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두렵고 무섭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서 슬퍼하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다만 두렵고 무서운 마음에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어 행동한다면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 의외로 내가 하기 어려웠던 말이나 행동들이 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고는 한다. 그러니 스스로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딱 눈을 감고 10초 동안 용기를 내보자. 분명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