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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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2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를 최근에서야 접하게 되었다. 제목을 보고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는 뜻인가 싶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꼭 '미움'에 한정적인 용기는 아니었던 거 같다. 이 책은 유명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초로 쓰게 되었고, 읽을수록 기존의 가치관과 많이 충돌이 일어났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들러는 원인에 의한 결과가 아닌, 목적에 의한 결과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존에 알고 있던 트라우마, 과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 가지고 있던 고민에 상황을 대입하며 읽기 시작했고, 책을 어느 정도 읽고 나서 마음이 많이 차분해질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나의 과제, 타인의 과제를 구분해볼 필요가 있었다. 친구를 만나자고 말을 할 수 있지만, 만나자고 강요할 수 없듯이 어느 순간 내 영역 밖의 일들까지 간섭하며 그 일들로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노력을 할 수 있지만, 그 결과로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뿐이었다.
목이 마른 사람을 개울가로 데려갈 수 있지만, 개울가에서 물을 마시는 건 본인의 선택이니까 말이다. '타인의 과제'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나니까 고민이 예전보다 훨씬 간결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아들러는 목적론에 의해 삶이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하는데, 처음에는 사실 잘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이 찐 건 운동도 적게 하고 많이 먹어서야'라고 보통 생각하기 마련인데, 아들러는 '내가 살이 찐 건 내가 살이 찌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야'라고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프로이트의 원인론이 삶의 일부분으로 들어와 자연스레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게 되어서 그런지 아들러의 목적론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원인론은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고 보는 반면, 목적론은 과거의 특정한 기억이나 선택이 아닌, 현재 자신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선의 차이가 사소해 보이지만, 굉장히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모습을 내가 선택했고, 바뀌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는 게 아들러의 주장이다. 과거의 일 때문에 나를 발목 잡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과거의 경험이 아예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고, 되돌아갈 수 없으니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한다. 과거의 경험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중요한 것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살을 빼고 싶다면 그저 살을 빼는 걸 선택하면 그만이다.
이미 일어난 과거도 중요하지 않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도 중요하지 않다.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여기라고 아들러는 말한다. 그리고 지금을 가장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책에는 용기에 대해서 엄청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겠다는 용기를 선택하는 것이 작은 첫걸음이라고 말이다. 최근 사이가 어색한 친구에게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연락을 하기까지 엄청난 갈등이 있었지만,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그 친구가 나를 안 만나주는 건 그 친구의 과제였고,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실망하고 자책할 필요 없다는 무언의 용기를 얻었다.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지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행복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도 물론 중요하고, 과거의 내가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밖에는 없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서 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약간의 미움을 받더라도 용기를 내어서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듯싶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