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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시작은 관심
어제저녁에 산책을 하며 문득 떠올랐다. 질문의 시작은 관심이 아닐까 하고.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떠오른 생각에 대해서 깊이 있게 몰입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게 되면 궁금한 것들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며, 누구와 함께 있는지 등등.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질문이라는 걸 하는데, 질문의 질은 바탕, 본질이라는 뜻이고 문은 물어보다 라는 뜻의 한자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 나의 일상에 대해서 궁금해한다면 그건 아마도 관심에서 비롯된 질문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관심이라는 단어는 정확히 어떤 뜻일까. 참 신기하게도 관심의 관과, 관절의 관은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뼈와 뼈를 이어주는 관절,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관심. 관심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매개체 같은 역할은 아니었을까. 관심이 생겼다고 하는 말에는 단순히 호감이 생기고 끌리는 것을 포함해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단어가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그동안에 관심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지 관심이 생겼다는 거 자체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었지만, 사실은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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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부조화
1950년대 초에 미국의 어떤 마을에 사이비 교주가 나타나서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으며, 조만간 일어날 큰 홍수에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고,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그것을 믿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운명의 날에 모였는데 홍수는커녕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으나 오히려 신도들은 더욱 믿음이 커졌다. 사이비 교주는 '당신들의 믿음이 신을 감동시켰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으나, 신도들은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그동안 믿었던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쉬운 선택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을 당하거나, 다이어트로 인해서 단식을 하는데 맛있음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면접을 봤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 등등 지금의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는 '인지 부조화'의 원리가 작용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밀어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의 매력을 못 알아보다니 사람 볼 줄 모르네'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아침에 회사에 지각을 하면 늦게 일어난 것보다 '한번 지각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라면서 말이다.
뇌에서는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래서 자연스레 안정을 찾으려고 스스로 합리화하게끔 만들어버린다. 담배를 끊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다가도 '한 개비 정도는 괜찮겠지?' '이것만 피우고 진짜 끊어야지' '담배보다 해로운 게 얼마나 많은데' 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보다 그렇지 않은 이유들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참 신기하게도 그게 진실이라고 또 믿게 되고 심적인 부담이 좀 줄어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자기 합리화에 빠지게 된다면, 같은 문제에 있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쉽다. 이성에게 아무리 열심히 대시를 해도 성과가 없다면 자신의 매력을 못 알아본 이유도 조금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말하는 태도, 행동, 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등에서 문제가 있을 확률이 더 크다. 무조건적으로 잘해주는 건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행하는 선의는 호감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당장 나의 심리적 안정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길게 놓고 보았을 때 같은 문제에 또 직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본질적으로 '나'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