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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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어버이날 기념으로 부모님과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하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2년 전 처음 독립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크게 거절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이지만, 나와 누나가 집에 오시면 참 좋아라 하신다. 반주를 좋아하시는 아빠와 소맥을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물론 한 때 아빠를 미워한 적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당시의 아빠는 술만 마시면 엄마에게 심한 욕을 하셨고, 그 소리를 들으며 울면서 잠들었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빠가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했다. 행동 자체를 이해한다기보다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면서.
아무리 헤아려도 부모님의 마음은 내가 자식을 낳아봐야 안다고 하지만, 얼마나 심적으로 힘드셨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빠도 처음 겪는 30대, 40대, 50대가 많이 서툴고 어색하기만 하셨을 텐데, 나의 시선에서 판단하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아빠와 벽을 만들기도 했지만, 10대를 겪고, 20대의 절반을 겪고 나니 아빠도 내 지금의 나이일 때 비슷한 감정들을 많이 느끼셨겠구나 싶다.
오늘 유독 마음이 아팠는데, 얼마 전에 건강이 더 악화되신 할머니 이야기를 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나에게 있어서도 할머니는 매우 소중한 존재시지만, 아빠한테 할머니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병원에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뵈러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왕복 4시간 거리를 오가며 할머니를 뵈러 가신다.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문득 나는 평소에 아빠를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싶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소주나 한잔하자'는 전화에 매 번 거절하기 바빴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가면서. 아빠도 분명 건강이 더 나빠지시면 좋아하는 술도 못 드실 텐데, 저녁에 잠깐 시간 내는 게 그리 어려웠나 싶으면서. 아빠는 분명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을 에둘러서 '소주 한잔'으로 표현하신 게 아닐는지.
물과 공기가 정말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듯이 오늘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에 잊고 지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아빠와 마시는 소주 한잔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될 거 같다. 아빠의 기억 속에 어떤 아들로 기억될지는 지금도 분명 늦지 않았다. 있을 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