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돌아본다

by 이은

해와 월을 단위로 살다보면 자연스레 12월에는 한 해를 돌아보고 다음 해를 계획하게 된다. 올해가 내년이 되는 순간 바톤을 건네면 마치 주자가 바뀌기라도 하듯 새롭게 살아갈 것을 결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도 주자가 바뀌는 법은 없다. 심기일전의 마음은 그저 숫자가 일으키는 착시효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달력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나는 12월이라고 그닥 특별할 게 없다. 개인적으로는 날이 따뜻해지는 3월, 더위가 가시는 9월,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10월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마 나는 연월식 인간이기보다는 계절 혹은 절기식 인간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동지가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동지가 지나면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집을 나서는 이들에게 서둘러 아침이 찾아올 것이다.

연월식 셈법으로 12월(11월까지 포함해)은 내게 물타기의 달인 것 같다. 떨어진 주식 평단가를 조정하듯 미진했던 부분을 보충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여러 변화들로 알게 모르게 몸살을 앓았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변화된 삶에 맞춰 몸과 마음의 눈금을 재조정하는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럴 걸 예상하고 많은 여유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진 못했다. 경험들은 항상 요구되는 제 시간만큼을 우리에게서 다 찾아간다.

올 한 해 새로 시작한 것은 약간의 경제활동이었고, 게을리한 것은 책 읽고 사색하는 것, 약간의 글쓰기였다. 독서가 취미고 생활이라고 늘상 말해왔는데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잘만 살아지더라. 하지만 책을 멀리하고, 좋은 생각들을 담지 않으니 사고나 언어 수준이 급격히 저하되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좋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희미해지고, 욕심껏 되는대로 살자는 마음이 커져갔다. 이 나이쯤 되면 그래도 기본적 교양은 유지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역시 오산이었다.

그래서 가을 바람이 불 때쯤 올해 독서의 물타기를 계획하고 나섰다. 어차피 권 수로는 만회가 안 될 것 같아서, 유발 하라리의 책 <넥서스>를 8주 동안 세세하게 읽으며 공부하기로 했다. AI혁명이 현실 세계로 급속히 파고들기 시작한 2025년, 이 책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물론 역사학자의 하라리는 정보와 사회 체제에 대한 인류사 전반에 대한 썰(사례들) 역시 흥미롭게 풀어낸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글벗 한 분과 <넥서스> 원서와 번역서를 동시에 읽고 매주 읽은 내용을 공유하고 발췌 해석을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외국어(+인문 사회과학) 스터디를 오래 꿈꿨는데 영어 학습자로 산지 거의 20여년만에 소원을 성취했다. 올해 독서 물타기도 물타기지만 동아리를 통해 학습 도반을 만난 소중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2025년 12월(+11월)은 이렇게 기억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인생 기억의 한 조각이 될른지도 모르겠다.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