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버지 댁에서 차를 마시다가 찻잔이 너무 뜨거워 깜짝 놀랐다. 정수기 옆에 놓인 차반에 가볍고 얄쌍한 잔이 나와 있길래 무심코 사용했더니 그건 찻잔이 아니라 술잔이란다. 아버지께선 좀더 두툼하고 묵직한 찻잔 두 개를 꺼내놓으셨다. 차를 다시 따르고 잔을 들어올리는 순간 무게감 있는 찻잔이 품은 따스한 온기가 손 끝으로 전해졌다. 몇 모금 나눠 마셔도 끝까지 은근한 온기를 잃지 않는다. 좋은 찻잔이구나.
따끈한 찻잔을 쥐고 있으니 요즘은 잘 안 보이는 엽차잔이 떠올랐다. 여름에는 냉수를 겨울에는 온수를 따라주던 투박하게 생긴 갈색의 도자기잔. 분명 다른 색깔도 있었을텐데 엽차잔 하면 갈색이 먼저 떠오른다. 반짝이는 유광의 맨질맨질한 도자기잔, 손잡이도 없어서 손가락 전체로 쥐게되는 잔이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담긴 찻잔을 양손을 움켜쥐고 손을 녹이기도 했었다.
어느샌가 식당에서 사용하는 컵들이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레스로 대체되었다. 둘다 냉수를 따르기엔 문제가 없지만 따뜻한 물이나 차를 담아 마시는덴 적합하지가 않다. 보온 기능과 그립감을 자랑하는 텀블러 역시 엽차잔의 감성을 품지 못하는 것 같다. 안에 담긴 음료는 따뜻하겠지만 텀블러를 쥔 손은 여전히 시릴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매 시즌 스페셜 에디션이 출시되는 텀블러의 인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물론 텀블러가 표방하는 시대 감성은 엽차잔과는 완전히 다를 테니 절대 불평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수많은 사물들이 사라지거나 대체되는 것을 목격한다. 사물이 사라지면서 손끝으로 전해지던 그 사물에 대한 감각들도 함께 사라진다. 그립감이란 말은 흔히 들리는데 사물이 가진 질감이나 촉감을 묘사하는 언어들은 단순하고 뭉툭해지는 것 같다. 손에 닿지 않는 온라인, 어딘지도 모르는 가상세계가 확대되고 있는 탓일까. 가끔 영상 속 공간의 온도나 냄새를 떠올려보곤 한다. 그 속의 사물에 손을 뻗어 질감이나 촉감을 느껴보고 싶을 때도 있다. 언젠간 이런 것들도 가능해질까. 아니면 지금 가진 감각들이 퇴화되고 최소한만 남게 될까. 생각이 너무 멀리 흘러간다. 이쯤 하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러 가야겠다.
#사라지는질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