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리셋되는 존재가 아니기에 오늘의 나에게는 언제나 어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상적인 감정의 잔여물들은 대개 밤 사이 숨이 죽고 누그러진다. 오늘이 어제에, 현재가 과거에 잠식되지 않는 이유, 인간 감정의 메커니즘이 그런 것일 테다. 그러니 어제의 일화에 오래 빠져 있지 않는 것, 어제의 희노애락을 세세하게 곱씹지 않는 것이 오늘을 잘 사는 방법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며칠 쉽게 떼어내지 못한 기분이 있었다. 서운함이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 스펙트럼 중에서 서운함은 꺼내기가 참 어려운 조각 같다. 내가 가진 기대와 상대방의 보상이 어긋날 때 슬며시 생겨나 모르는 새 자라난다.
서운함이 어려운 이유는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상대방 탓이라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막연한 기대, 아니 너무 구체적 보상의 기대를 품은 내 탓인 것만 같다. 그러선지 서운함을 따질 때면 결국 서로에 대한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게 된다. 상대방에 비해 내가 더 마음을 쓰고 있다, 내가 더 잘 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해지고, 그런 말을 꺼내려 들면 이미 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선지 누군가에게 서운하다는 말을 하긴 항상 좀 그렇다.
친구는 서운함을 순하고 착하고 비폭력적인 감정이라고 했다. 같은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서운함 대신 화나 분노를 표출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나 역시 서운함을 느끼기 전에 사실 화가 많이 났었다. 며칠 지나고 남은 감정이 서운함이었다는 걸 미처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화나 분노는 오래 품고 있기 힘들지만 서운함은 은근 뒷끝이 길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어제의 잔여물들에 생각을 멈추고 더 이상 감정을 일으키지 않은 채 운동만 하며 며칠을 보냈다. 서로 나눈 대화를 곱씹지 않기, 주고 받은 것들을 꺼내어 줄 세우지 않기,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지 않기, 아니 아예 생각을 말기. 생각을 않는 게 감정을 비우는데 도움이 되고, 몸을 움직이는 게 내게는 생각을 않는 최선의 방법 같다. 몸의 온도가 상승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의 온도까지 잘 유지가 된다. 몸과 마음의 연결성을 늦게서야 깨닫고 있다. 이렇게 며칠 지내고야 간신히 서운함에서 벗어난다. 글로 쓰니 정말 확실히 가벼운 느낌이다.
바라건대,
어제는 어제에 남아라
오늘은 오늘이고 싶으니.
#어제의잔여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