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라는 온실에서 살고 았다. 대기가 만들어내는 온실효과가 없었다면 이 땅에 이만큼 생명이 번창할 수 있었을까. 인류 문명이 지나치게 번창한 탓에 지구 온실이 가스로 뒤덮혀 갈수록 더워지고 있다는 게 문제겠지만 말이다.
잘 아는 날씨, 익숙한 계절이 사라지고 있다. 그날 옷차림이나 하루 기분을 좌우하던 매일의 날씨가, 태어나면서부터 누리며 살아온 기후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가부터 여름이 더 더워지고, 겨울이 더 추워진다. 어느 해는 이상하게 안 덥고, 다음 해는 이상하게 안 춥다. 이상 고온. 이상 저온, 이상 한파, 이상 폭설... 이상이 너무 빈번하니 이제는 이상 날씨가 정상처럼 느껴진다. 날씨나 기후에 대해 우리가 알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예측 불가능성만이 유일한 사실로 남은 듯하다. 지구 온실이 고장났다. 물론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기후 변화의 결과 인류가 스노볼이라는 진짜 온실에서 살게된다는 판타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스노볼 속 사람들은 최적의 온도로 맞춰진 내부에서 1년 내내 쾌적하게 지내지만, 스노볼 밖 사람들은 혹독한 겨울만 지속되는 척박한 세상에서 생존을 위협받는다. 알고 보니 스노볼 밖 사람들의 육체노동으로 동력을 일으켜 스노볼 내부의 전기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이 진실이 폭로되는 순간이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였다.
이상하게도 별로 춥지 않은 올 겨울, 극강의 한파가 곧 찾아올 거라는 예보로 며칠전부터 수선스럽다. 문득 지구 온실 속에 공존하는 서로 다른 풍경들이 떠오른다. 극강 한파에도 추위를 걱정 않는 사람들 너머로 아무리 막아도 새어드는 한기 때문에 잠 못드는 사람들이 살고있다. 수명을 다해가는 지구 온실 안,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는 결국 소수만에게만 허락된 스노볼로 귀결될까. 인류 문명이 번영한 끝에 다달은 종착지가 소수에게만 허락된 완벽한 천국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오늘 인류를 구하러 세상에 온 아기 예수의 탄생일, 그리고 올 겨울 최강 추위가 곧 들이닥칠 한파 전야에 지구 온실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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