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어 사전_호빵

by 이은

겨울이면 원통형의 호빵 찜기가 가게 안 쪽에 하나씩 놓여있었다. 김 서린 찜기 안에 칸칸이 삥 둘러 놓여있는 하얀 호빵이 왜 그리 맛있어 보였는지. 아무리 추운 날에도 호빵 찜기를 보면 뭔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호빵 하나 주세요ㅡ' 하면 가게 사장님께서 호빵을 집어넣은 순서를 기억했다가 잘 쪄진 것을 골라 주시곤 했다. 그렇게 건네받은 소담한 호빵 하나가 그날의 행복이었다.


이제 더이상 가게나 마트에서 호빵 찜기를 보기 힘들다. 편의점에서 본 것도 같은데 그것도 꽤 오래 전 일이다. 사시사철 먹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겨울이라고 누가 호빵을 찾을까도 싶다. 찜기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마트에서 파는 호빵을 보는 날엔 왠지 반가워서 한 개쯤 집어오게 된다. 냉동실에서 얼려두었다가 가끔 생각날 때 해동해 먹으면... 왜 그때 그 맛이 안 날까? 요즘 호빵은 이상하게도 그 시절 그 맛은 아닌 것 같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건 맛이 아니라 그 시절의 정서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친구와 공연을 보려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가는 길이었다. 날씨가 스산한데다 해도 짧아져서 이미 어둑해진 시간,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자 멀리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지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이 흘러나왔다. 마치 드라마처럼 BGM이 깔리는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 편 3D 전광판에서 갑자기 호빵을 든 손이 쑥 하고 나오는 게 아닌가. 하마터면 손을 내밀어 호빵을 받을 뻔 했다.


공연하는 쪽으로 걷고 있는 건지 노래 소리는 점점 커져가고 광화문 대로 양쪽으로 늘어선 대형 전광판에서 뿜어내는 섬광들은 마치 미래의 한 순간 같은 환각을 불러 일으켰다. 뭔가 초현실적인 느낌에 빠져 걷고 있는데 호빵을 내미는 커다란 손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 다시 사라졌다.


#겨울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