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분위기도 딱 지금 같았다. 수 년 전 아마 봄이었을 것이다. 너도 나도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 다른 종목도 샀겠지만 내게로까지 전해진 건 삼성전자였다. 어딜 가나 사람들이 주식 얘길했는데 큰애 생일 모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다 요즘 깨인 부모들은 애들 용돈 대신 주식을 사준다는 얘기가 나왔다. 뭐든 신식(?)을 좋아하는 아버지께서 큰애 선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덕분에 큰애는 집안 최초로 주식 계좌를 가진 사람이 됐다. 그리고 몇 달 뒤 삼성전자 주식이 오를만큼 올랐을 때, 나도 기어이 주식 계좌를 열고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 운좋게 막차를 타는 줄 알았으나 상투를 잡았다는 걸 아는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저축이 아닌 투자를 하게 됐다는 뿌듯함 때문이었는지 주가 하락에도 남편은 매달 꾸준히 주식을 사는 게 좋겠다고 했다. 소위 요즘 말하는 무지성 적립식 투자를 하잔 말이었는데, 채 반 년이 되지 않아 계획은 흐지부지 됐고 지출의 우선순위에 밀려 주식은 우리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여전히 투자는 쓰고 남는 돈으로 하는 것이고, 운이 좋으면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낼 수도 있다는 게 주식 투자에 대한 그때의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핸드폰이 아닌 컴퓨터로만 은행 거래를 했기 때문에 주가를 확인하려고 귀찮게 컴퓨터를 켜지 않았고 얼마 뒤에는 주식창의 비번도 까먹고 말았다.
올 겨울, 분위기가 딱 그때 같아졌다. 아니 이번엔 더 빠르고 더 뜨거웠다. 주식 투자에 조심스럽던 사람들마저 안 하는 게 바보라고, 미련한 거라는 분위기가 더해졌다. 주식 투자로 패가망신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함께 이번엔 코스피 지수라고, 아니면 미국 테크 기업, S&P500을 사야한다고 했다. 한 번 본 유튜브 영상 때문인지 비슷한 투자방식과 유사한 투자종목을 추천하는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나도 그동안 잊고 있던 주식 계좌의 비밀번호를 찾았다. 핸드폰에 주식 앱을 깔고 간편인증만 하면 되는 너무 간단한 과정이었다. 이걸 몇 년을 귀찮다고 미루고 있었다. 아니 열어본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열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들어가보니 삼성전자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다. 수익률이 10프로에서, 20프로, 30프로를 넘어 계속 오르는 중이다. 사놓고 팔아본 적이 없는 까닭에 계속 올라도 고민이 생긴다. 남편은 팔지 말고 계속 가지고 있으란다. 지난 번에 적립식 투자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다시 한 번 적립식 투자를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수익률이 내 평생 다시 날까 의심스럽다. 팔아서 돈으로 만들어야 진짜 돈을 버는 게 아닐까? 주식 계좌에서 하루 종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수익률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린다.
문득 전에 읽은 <반려빚>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이제 돈이라는 게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어서 채무도 투자도 인생의 반려가 되고 있다. 채무의 무게도 투자의 위험도 반려라 부르기에는 마땅찮게 느껴지지만, 오래 함께 가야만 한다면 옆에 두고 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내게는 삼성전자가 반려주식인가. 반려인지도 모르고 몇 년을 함께 했는데 이젠 언제쯤 헤어져야할지가 고민이다. 반려주식 갖고 계신 분들, 헤어짐의 적기는 언제인가요? 힌트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