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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 Dec 27. 2021

식기세척기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52일 채식주의자 7

1년 365일 엄격한 채식 식단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채식 지향의 음식을 해 먹으며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어 가자. 당장 실행할 수 있고, 오래 지속가능한 실천만이 삶을 바꿀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지난 화요일은 <52일 채식주의자>의 다섯번째 그린데이였다.

지난 해 이사를 하고 집에 식기세척기를 들였다. 그제서야 결혼 후 무려 15년 간 지난하게 이어지던 남편과 나 사이의 설거지 전쟁이 끝이 났다. 설거지를 놓고 벌인 우리 두 사람의 싸움은 멈출 듯 멈추지 않고 결혼 생활 내내 이어졌다.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난 그릇을 는 노동 그 이상의 의미였다. 집안 일을 비교적 공평하게 나눠하며 산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요리와 설거지만큼은 당연한 내 일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거들 뿐.

이사 전 살던 집에도 빌트인 식기세척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여태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지 않았었고, 오래된 아파트 입주 때 설치된 식기세척기를 사용한다는 게 찜찜하기해서 사용하질 않았. 떠올려 보니 귀국 전 10년 넘게 미국 렌트 아파트를 전전하는 동안에도 식기세척기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개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옵션이 아닌 아파트는 있어도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없는 아파트는 없었다. 그만큼 식기세척기는 이미 냉장고만큼이나 흔한 미국인의 필수품이었다.


그런데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지 않은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내게 식기세척기 문화란 게 여전히 생소했기 때문이다. 2000년 대 초반 미국에 갈 때까지 나는 식기세척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 그때까지 한국 사람들에겐 아무렴 기계가 사람만큼 깨끗하겠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손으로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그릇을 닦아내던 시절이었다.


두번째는 식기세척기라는 게 양식기를 기본으로 개발된 거라 오목한 한식기를 넣으면 잘 닦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밥그릇에 붙은 끈적한 밥풀까지 잘 떨어질까 의심스러웠다. 정말 그런가 실험을 해볼만도 한데 긴 세월 식기세척기에  자리를 내어주고도  막상 확인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몸에 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워서 내가 가진 인식이나 행동을 바꾸기보단 익숙한 일상을 그저 고수하며 살게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손으로 빨리 설거지를 하는 게 시간 절약, 물 절약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식기세척기를 돌리면 최소 45분-1시간은 돌아가고, 웬지 물도, 전기도 많이 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냥 그 시간에 내 손으로 빨리 하고 말지 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설거지거리는 사라지지 않고, 싱크대에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두 아이를 돌보 그 때 그 때 먹은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육아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고 아이들은 집에서도 항상 많은 관심과 주의를 요하는 존재들이다. 간신히 매끼 식사와 간식을 해 먹다 보면 싱크대에 식기와 냄비, 조리도구들이 산처럼 쌓이던 날이 많았다. 어느 날은 하루 밤을 넘기고 아침까지 그대로 쌓여 있었다. 우렁이는 어느 집을 방문하는지 우리 집에는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설거지를 놓고 남편과 나는 신경전을 벌이는 날이 많았다. 어느 한 쪽이 피곤하고 예민한 날에는 신경전이 싸움으로 이어졌다.  빨래는 내가 하고 청소는 남편이 하기로 분담한 이후로 설거지가 우리 싸움의 주요 원인 됐다. 일하고 돌아온 남편 VS 집에서 애 둘을 돌본 나, 둘 다 저녁을 먹고 나면 손도 까딱하기 싫었다. 그때 식기세척기를 사용했더라면 우리의 저녁이 조금은 여유롭지 않았을까 이제야 후회가 든다. 설거지 때문에 니가 힘드네, 내가 힘드네 서로 감당하고 있는 고생의 무게를 비교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결국 설거지를 하게된 사람이 접시를 다 깨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온집안에 화난 기운을 퍼뜨리는 일도 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놓을 그릇이니 깨끗하게 기름기 하나 없이, 밥알이나 고춧가루 하나 남김없이 매일 깨끗이 씻어 말린다. 혹시 세제라도 남을까봐 몇 번을 헹군다. 집안일 하나 하나가 실은 어느 하나 허투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해도 해도 티 안 나는 일, 그렇다고 미뤄두면 눈에 확 띄는 그런 요상한 일이 집안일이다.

식기세척기를 1년 이상 사용해 보니 편하고 좋은 점이 많다. 신경 써서 해야 할 설거지를 대충 후딱하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도우미이다. 그렇다고 아예 할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음식 찌꺼기만 대충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되니 손 설거지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빌트인 가전에는 다 이유가 있다.


누가 설거지를 해야하나 고민하는 당신에게, 혹은 식기세척기 구입해야 하나 고민하는 당신에게 나는 식기세척기를 들이라 감히 조언하고 싶다. 식기세척기의 가격과 성능에 대해서는 비교 조사가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고민하는 것이 식기세척기의 존재 이유, 그 유용성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육아로 바쁜 엄마 아빠라면 더욱더 추천한다. 설거지 정도는 기계에 맡겨도 아무 일이 안 생긴다. 오히려 하루를 빨리 정리하고 30분 더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손으로 꼭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는데 15년이 넘게 걸렸다. 당신의 결정은 이보다 빠르기를 바란다.


The 5th Green Day

점심은 2주 전과 마찬가지로 콩나물 쫄면이다. 상추와 구운 계란까지 썰어 넣으니 파는 쫄면이 안 부럽다. 자주 해 먹게 될 메뉴.


해초 샐러드와 두부면을 섞어 먹을까 한다. 요즘 두부면을 이것 저것에 섞어 요리나 반찬을 만들고 있다. 반응도 좋다.

"순두부 그라탕, 네 가지 야채"만 읽고 당연히 채식 요리 일거라 생각을 했다. 그런데 소스에 돼지고기가 섞여 있는 걸 나중에 확인했다. 재료를 더 꼼꼼히 읽어야 한다.

동지가 있던 주였다. 네 식구 먹으려고 죽 2개를 구입하고 아욱국, 시금치, 멸치, 버섯 잡채를 샀다.

위에 구입한 반찬과 순두부치즈그라탕에 모짜렐라 치즈볼을 넣어주었다. 순두부치즈그라탕에 돼지고기가 섞여 있어 채식밥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순두부치즈그라탕이 너무 맛있었다. 다음엔 순두부, 토마토소스, 모짜렐라 치즈 등을 구입해 직접 만들어 먹을 계획이다. 메뉴 하나를 배웠으니 채식 밥상 실패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너무 맛있게 먹기도 했고.


다음 날 엄마는 동지팥죽과 동치미를 해 뒀으니 받아가라 하셨다. 엄마가 해 주실지 알았으면 사 먹지 않는 건데.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다. 만들어 놨으니 받아 가라든지, 아니면 당일날 전화로 오겠다 하시고는 반찬을 풀어놓는다.


엄마가 나이가 드는지 "그래도 할머니가 옛날에 동지팥죽 해줬어..." 나중에 이렇게라도 추억할 게 있어야지 하신다. 엄마는 원래 팥죽 같은 건 안 만드는 사람이었다. 코로나로 할 일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보니 엄마는 자꾸 이것 저것을 만들어 주신다. 좁은 아파트 부엌에서 혼자 팥을 삶아 곱게 내리고 새알을 빚어 팥죽을 쑤고 있었을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 용돈을 드려야겠다.


감사히 받아온다. 감사히 먹는다.

며칠 지나니 이제야 동치미에 맛이 든다.

엄마의 동치미, 언제나 옳다.


타이틀 이미지 출저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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