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서울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I 서도호 <바닥>
멀리서 작품을 바라본다. 유리판에 연꽃 모양의 무수한 점들이 찍혀있는 듯하다. 자못 어지럽다. 다가가 내려다보니 연꽃이 아닌 손바닥과 얼굴이다. 이번에는 무릎을 굽혀 유리판을 아래서 바라보니 수만 개의 작은 인물 조각이 팔을 들어 올려 유리 바닥을 지탱하는 꼴이다.
서도호의 대표적인 설치 작업 중 하나로 분류되는 <바닥>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석은 정권이 국민을 억압했던 한국의 비극적인 근현대사에 대한 자조다. 그 자조는 모든 시련에도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민중에게서 나온다는 희망으로 극복된다.
무릎을 굽히는 수고를 해야만 민중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관람 방식도 매력적이다. 군림하듯 위에서 내려다봐서는 민중의 열정과 노고를 절대 알 수 없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다양성'과 '연대'도 중요한 키워드다. 인물 조각을 면면히 살펴보면 성별과 피부색이 다르다. 어떤 조각은 옆에 있는 조각에 기댄 모습이다. 사회라는 건, 이처럼 다양한 사람의 연대로 구성된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I 박이소 <당신의 밝은 미래>
작품의 이름과 작품의 구성 요소 사이의 간극이 흥미롭다. 각목들이 불안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지탱한다. 제멋대로 엉킨 전선이 각목 사이를 어지러이 헤집는다. 각목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투박한 전등은 일제히 순백의 벽을 비춘다.
전등이 만들어낸 밝음이 너무도 인위적이고 맹목적이어서 '밝음'이라는 단어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박이소 현대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낙관주의를 묘사했다고 한다. 2002년 작품이지만 작가의 주제의식은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듯하다.
불안정한 구조물과 엉성한 배선이 상징하는 불안과 슬픔은 최대한 억눌린 채, 표면에는 최대치의 행복만이 전시된다. 이는 SNS에서 소비되는 과장된 긍정과 다르지 않다. 더 강렬한 빛을 허공에 쏘아 올리려 애쓰다 결국 좌절하는, 오늘날 사회의 초상이다.
I 성능경 <위치>
검은색 옷을 입은 남성을 같은 구도로 촬영한 9장의 사진이 횡으로 나열돼 있다. 특이점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린다. 잡지의 위치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하강한다. 잡지를 붙들고 있는 신체 부위도 제각각이다. 잡지의 기묘한 행보는 입에서 시작해 발가락에서 끝이 난다.
행위예술가 성능경의 작품 <위치>다. 작품에 등장하는 잡지는 미술잡지 '공간(1976년 6월호)'이다. 당시의 유일한 미술잡지였으니 권력이 막대했을 수밖에. 공간에 이름이 올랐는지에 따라 세간의 평가가 달라졌을 것이다.
성능경은 당시 한국 예술계가 공간에 휘둘리는 행태가 한탄스러웠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통해 말한다. 공간이 붙드는 방법에 따라 입에서 발가락으로 하강하는 모습을 보라. 공간은 당신들이 억지로 끌어올린 허상일 뿐이다. 그 허상은 과연 예술을 진심으로 품을 수 있는가.
I 신학철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검붉은 빛깔에 초장부터 섬찟해진다. 목이 잘린 채 나무 밑동을 끌어안는 시신에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진다. 나무 밑동 위에는 불을 경계선 삼아 수많은 인물이 수직으로 배열됐다. 아이를 업은 어머니와 허름한 옷차림으로 총을 든 사내, 앳된 학생 등 전형적인 민초의 모습이다.
이들의 시선은 정면 혹은 아래를 향한다. 누구도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다. 신학철의 작품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암울한 근현대사 속에서 자유를 위해 연대하고 투쟁했던 민초에 대한 헌사다. 우리는 하늘을 보지 못한 이들의 핏빛 투쟁으로 (상대적으로) 푸른 하늘 아래 살고 있다.
신동엽 시인이 쓴 동명의 시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인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인생을 살아갔다. (중략)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I 박현기 <무제>
다양한 모습과 크기의 돌, 그 사이, 넓적한 돌 하나. 그 위에 얹힌 중간 크기의 돌 위로 텔레비전이 얹혀있다. 화면 안에도 돌이 쌓여 있다. 그 위로 다시, 돌 하나가 얹혀있다. 실재하는 돌과 가상 속에 존재하는 돌이 차례로 쌓여 하나의 돌탑처럼 보인다.
한국의 1세대 비디오 아트 작가 박현기의 <무제>다. '비디오 돌탑'으로 불리는 여러 작품 중 하나다. 그는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이 돌을 주워 탑을 쌓고 소원을 보는 모습을 보고 돌에 주목했다. 그에게 돌은 실재(물질)하면서 동시에 가상(염원)의 표상이다.
박현기는 실재와 가상의 혼재를 쌓아 세상을 구현했다. <무제>로부터 대략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가 쌓은 돌탑은 아득히 높아졌다. 실재와 가상은 어지러이 뒤섞였다. 실재하는 존재(인간)가 가상의 존재(AI)와 사랑에 빠지는 시대다.
<무제>가 '돌탑'이라면, 가상 속 존재와의 사랑도 '사랑'일 것이다. 무제. 구태여 과거의 상식에 기대 이름 짓지 않고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