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리 교수 '석원 쌤'에게
저자 '미치 앨봄'은 늦은 밤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다. 대학을 다닐 때 자신에게 삶을 가르쳐준 '모리 교수'가 토크 쇼에 나와 불치병(루게릭 병)을 앓고 있다고 알린 것이다.
미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는 게 바빴다'는 이유로 모리 교수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은사의 투병 소식에 16년 만에 용기를 낸다.
모리 교수는 서운할 법도 했을 텐데. 성치 않은 몸으로 따듯하게 미치를 맞아준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마다 미치를 대상으로 마지막 강의를 진행한다.
나의 모리 교수 '석원 쌤'에게 배운 것들
이 책을 짚자마자 석원 쌤 생각이 났다.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 돈을 한 푼도 챙기지 않고 광주에서 해남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그때 해남에서 꽤 큰 규모로 농사를 짓는 석원 쌤을 만났다.
석원 쌤은 『그리스 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조르바 같은 사람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체력과 투지가 넘쳤고, 자유롭고 호쾌했다. 무엇보다 사색을 멈추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이따금 주말에 시간이 되면 석원 쌤을 찾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트럭 뒤에 실려 얼마간 이동한 뒤, 밭에 내려 저녁 6시까지 새참과 식사 때를 제외하고는 밭일을 했다.
일을 마친 후에는 석원 쌤 집으로 돌아와 온갖 재료를 털어 넣은 찌개나 삼겹살을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다. 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긴 대화를 나눴다.
"승원아. 늙은이가 무슨 뜻이냐."
"늙은 사람이지 않나요?"
"늘 그러한 이. 늘 그렇다는 뜻이다. 수용하지 않고 관성대로 사는 사람이 늙은이다. 나이가 많아도 늙은이가 아닐 수도 있고, 나이가 적어도 늙은이일 수도 있는 거야."
"승원아. 그러면 젊은이는 무슨 뜻이겠냐"
"글쎄요. 늙은이처럼 숨겨진 뜻이 있을 것 같은데, 감이 정말 안 오네요."
"저를 묻는 이. 나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늙은이처럼 관성에 찌들어 사는 것을 거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뤄졌다. 언어유희에 일가견이 있던 석원 쌤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를 들리는 대로 분해한 뒤 본인의 생각을 담아 재해석하기를 즐겼다.
그 해석에는 힘이 있었다. 석원 쌤이 살아온 삶이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삶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준 셈이었다.
언어유희를 적절히 활용한 석원 쌤의 강의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내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됐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게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큰 자양분이 됐다.
석원 쌤은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말을 자주 했다. 만 평 가까운 농장을 밤낮없이 일구며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말자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살자고 조언하기도 했다. 석원 쌤은 자신의 재화와 시간과 노력을 무수한 이에게 베풀며 살아왔다.
(모리 교수가 미치에게: 우리 모두 출생이라는 걸로 똑같이 시작하지. 그리고 똑같이 죽음으로 끝나네. 그런데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거야? 인류라는 대가족에 관심을 가져야 하네.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게.)
'사는 게 바빴다'는 핑계로 놓친 것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석원 쌤에게 몇 차례 연락했으나 서로 시간이 닿지 않아 10년 가까이 보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미치처럼 ‘사는 게 바빴다’라는 이유에 숨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석원 쌤이 몸이 많이 상해 농장을 처분하고 요양 중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들었다. 휴가를 내고 원주에서 해남까지 500km를 운전해서 갔다.
10년 만에 석원 쌤을 보자 미치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수척해진 모습을 보자 속상함과 진즉에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미어지는 마음에 감히 변명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석원 쌤은 그런 나를 따듯하게 맞아줬다. 옛날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다과까지 준비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원아. 감사의 반대말이 무엇이냐."
"배은망덕한 걸까요?"
"'당연함'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강, 가족, 친구가 얼마나 감사한 건지 우리는 모르고 살아. 잃고 나서야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지."
석원 쌤과 예전에 나눴던 대화가 퍽 그리웠나 보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듯 석원 쌤의 가르침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삼킨다.
(모리 교수가 미치에게: 우린 물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도 거기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어, 사랑하는 관계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와 같은 것들을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
돌이켜 보니 당연하지 않은, 감사한 게 참 많았다. 석원 쌤을 비롯해 내 곁에 머무르고 있거나, 머물렀던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이기적이었고 서툴렀고 무지했던 내가 과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내게 이해와 애정, 존중과 배려를 베풀어준 수많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당연하지 않음을 잊고 살았다. 책을 쓴 미치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미치도 기자로 일하며 많은 사람을 접하고 글을 쓰며 정신없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나는 석원 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도 담당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해 노트북을 펼치고 경찰과 소방에 전화를 돌리며 기사를 써야 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들
(모리 교수가 미치에게: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기도 해.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나를 만나러 와 줄 사람들, 내가 앞으로 들을 이야기에 대해서 말이지.)
석원 쌤은 진을 다 빼놓는 극렬한 고통에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음을 느끼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집중했다.
이따금 경로당에 뻥튀기를 사서 어르신들에게 나눠 주고, 춤을 추며 재롱(?)을 떨기도 한다(경로당에서는 석원 쌤이 막내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오랜 친구들에게 내게 그랬듯 지혜를 나눠주기도 한다.
나의 은사가 병마에 잠식되지 않았음에 마음이 놓였다. 석원 쌤은 생각에 잠겨 있는 내 눈을 10년 전과 변함없는 총기 있는 눈으로 깊게 응시했다.
"승원아. 그래서 너는 어떻게 살고 싶으냐."
"기자 송승원은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나 기후위기 취약계층 돌봄 문제처럼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지 않고 방치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삶을 살고 싶고요.
인간 송승원은 석원 쌤처럼 물질적인 가치 이상의 것,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형이상학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석원 쌤과 이야기를 마치고 마당을 나오며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살면서 볼 수 있는 가장 많은 별을 보았다. 꽤 오랫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잘 커 줘서 고맙고 찾아와 줘서 고맙다. 나는 너무 기쁘다."
"제가 더 감사해요. 선생님. 종종 연락드리고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석원 쌤을 꼭 안아주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사이드미러 너머로 석원 쌤이 보였다. 휴대전화에서는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들으며 나의 모리 교수를 오래오래 마음에 담았다.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 자리 편히 쉴 수 있는 곳. 많은 것을 찾아서 멀리만 떠났지. 난 어디 서 있었는지. 하늘 높이 날아서 별을 안고 싶어. 소중한 건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