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게 될까

#21 영주권에 대하여.

by 뉴학생

처음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 올 생각을 했을 때 영주권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막연한 목표였다. 모름지기 이민은 그 나라에 정착해 사는 거고, 해외에 먼저 정착한 사람들을 보며 내가 필요하면 국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했었다. 뉴질랜드의 경우 영주권이 있으면 내국인과 동일하게 투표권이나 의료서비스, 연금 혜택 등을 받는다. 코로나로 몇 년 우리 계획이 늦춰지고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대학 졸업 후 쭉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나니 어디서든 내 전공을 써먹고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우리가 평생 다른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난 회사생활을 하면서 직급이랑 연봉을 조금씩 올려갈 테고, 남편은 아마 본인 사업을 시작해서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분양받은 아파트가 완공되면 살 곳이 있고 작은 경차를 팔고 조금 큰 차를 사서 여행도 한 번씩 다니겠지. 다른 상황이 안정을 찾으면 가족계획을 세워 우리 둘이 살거나 자녀를 낳아 50대 언저리에 난 퇴직, 남편은 몇 년 더 일을 하면서 삶을 꾸려갈 게 그려진다.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떠올리면 아직 채워지지 않은 도화지 같다. 내가 학업을 마치고 나면 우리 부부에게 3년짜리 워크비자가 주어질 것이고, 워크비자가 만료될 때즈음 한국으로 갈지 아니면 뉴질랜드에 정착을 할지 결정할 시기가 올 거다. 한국에서야 언제든 도움을 주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다지만, 여기서 우린 외국인 신분이고 도움을 받는 것도 제한적이라 힘든 상황이 닥치면 더 힘들 걸 각오해야 한다. 그 생활이 지겨운 순간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정을 내릴 것이다.


요즘은 누군가 영주권 따는 게 목표냐고 물으면 아직 모르겠다는 대답을 한다. 살다 보면 한국이나 뉴질랜드, 혹은 다른 나라에 둥지를 틀 수도 있을 것 같다.


캐나다에 이민해서 살다가 정리하고 돌아온 유투버 영상을 보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여기서 살다 보니 분명 느린 의료서비스나 공공서비스, 혹은 비싼 공산품 가격 등 불편한 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일찍 퇴근하고 바닷가 드라이브하고 헬스장에 다니면서 보내는 여가생활이 주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지난 4월 호주 이민 정책 변경으로 주변이 술렁이는 게 느껴진다. 호주에 4년 이상 거주한 뉴질랜드 시민권자에게 호주 시민권 신청자격을 준다는 게 주된 내용. 그간 뉴질랜드 시민권자의 경우 호주에서 영주권자로 일을 할 수 있는 반면, 연금이나 교육 혜택에서 제외된던 걸 시민권을 주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그동안 뉴질랜드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와 높은 물가로 인해 고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호주가 빨아들이고 있었는데 이게 가속화될 것이라 보고 있다.


호주 입장에서는 뉴질랜드에서 검증된 필요한 인력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지만, 뉴질랜드는 원래도 노동력 부족에 심한 상태이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고민이 될 것 같다. 반대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한테는 여기서 필요한 인력이라는 게 확인되면 정착하고자 할 때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혹은 우리도 한국으로 가거나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걸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최근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민성의 웨비나에 참석해 보니, 아직까지 명확하게 나온 방향은 없지만 뉴질랜드도 필요한 인력을 어떻게 선별해서 이민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그동안 Skilled Migrant Category에서 특정 점수 이상에게 신청자격을 주던 걸 좀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이민 정책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도, 어디 살 지 결정할 때가 오면 고민을 더 많이 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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