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뉴질랜드 바리스타

#19 뉴질랜드 커피문화 엿보기

by 뉴학생

2주 후면 뉴질랜드에 온 지 일 년이 되는 남편, 나보다 6주 먼저 뉴질랜드에 도착한 후 지금까지 잘 적응하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뉴질랜드행을 준비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영어가 서툰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가며 전화영어를 꾸준히 시켰는데, 정작 여기 오고 나니 나는 길을 잃고 남편은 묵묵히 일을 하면서 내 옆을 지켜준다. 한 명이라도 균형을 찾아 다행이다.


거진 10년 동안 커피일을 해온 남편은 뉴질랜드로 오기 전 3년 간 주로 커피 로스터로 일을 했다. 다양한 커피를 볶는 로스팅에 흥미가 있기도 했지만, 바리스타로 일하며 손님을 대하는 게 너무 지쳐 사람을 덜 만나는 포지션을 찾은 것이기도 했다. 커피 맛이 쓰네 시네, 따뜻한 음료를 시켜 놓고 아이스를 시켰다고 하거나, 여러 명에서 한잔 시키고 앉아있는 등등 하루에도 몇 번을 괴롭혔다. 물론 로스터로 일하면서도 몇 달 묵힌 콩을 반품해달라거나 본인이 주문을 누락하고 당일 퀵으로 콩을 (선불로) 보내라는 진상업체들도 있었지만 그 빈도가 음료 손님보다는 훨씬 적었다.


뉴질랜드에 와서 다시 바리스타 포지션으로 간다고 했을 때 짧은 영어에 진상 손님을 만나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막상 뉴질랜드에 와서 일을 시작해보니 생각지 못한 문화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에 자리 잡은 카페라 단골손님이 유난히 많은데 각 손님 전용 메뉴들이 남편을 맞이했다. 예를 들면 “R(사람 이름) 커피 한 잔 이랑 내 커피 한 잔 줘” 하면 그 손님의 메뉴를 기억했다가 계산하고 만드는 일이다. 특히 대체우유가 활성화되어 있으니 일반우유, 저지방우유, 무지방우유, 아몬드 우유, 귀리우유, 두유에 샷 개수, 설탕이나 시럽, 사이즈 등등 경우의 수가 많다. 한동안 단골손님들의 메뉴를 외우느라 애를 먹었지만, 요즘은 손님이 들어오면 “너 음료로 줄까?”라는 말을 먼저 건넨다.


장점이라고 한다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들어오는 손님들이다. 스몰토크가 일상에 자리 잡고 있으니 손님이 “좋은 아침~” 하면서 들어오면 날씨 얘기나 스포츠 얘기, 멋진 옷에 대한 칭찬 등 소소한 일상을 나눈다. 처음에는 영어로 어려움을 겪던 남편도 주문을 받는 것부터 적응을 해서 요즘은 범위를 점점 넓히고 있다. 바쁜 4월이 지나가고 화상영어로 영어공부를 하며, 수업에서 배우는 표현들을 단골손님에게 써먹기 시작했다.


특히 라떼아트는 뉴질랜드에서 남편의 강점이 되었다. 한국에는 라떼아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실력들이 뛰어나다 보니 남편은 대회 참여보다는 취미 생활 정도로 연습을 했었다. 토끼 해의 영향일지 부활절 토끼일지 모르지만 남편이 매장에서 그려주는 토끼 패턴에 손님들이 좋아했고, 뉴질랜드 중국인 커뮤니티에는 카페의 음식과 함께 라떼아트 사진이 올라왔다.

올 한해 열심히 그리고 있는 토끼 패턴


매장 밖에서도 소규모의 라떼아트 대회에 참가하며 오클랜드 커피쟁이들과 소통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에도 라떼아트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인력 풀이 작아 남편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어느 날 공짜 음식이랑 맥주를 먹으러 가자고 꼬드기더니 그 대회에서 남편이 덜컥 우승을 했다. 예상치 못한 우승에 얼떨떨하더니 우승 상품으로 받은 500달러 기프트 카드를 나한테 건넸다. 우리 외식할 수 있다!



솔직히 남편이 너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럽다. 코로나로 답답한 시간들을 묵묵히 기다리고 마침내 기회가 와서 잘 적응하고 있는 남편. 난 정작 학교 생활을 하면서 잔뜩 움츠러들어 이러다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한 번씩 올라온다. 아무래도 내가 이곳에 정착하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이런 내 마음 상태에 남편의 마음도 같이 초조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일 년 후에는 MBA 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가거나 구직을 하고 있을 시기이다. 남은 일 년 잘 참고 이겨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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