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밥벌이를 해보기로 했다.
MBA는 현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니 수업이 저녁 여섯 시부터 진행되었는데, 이 정보를 첫 학기 시작 직전 수강신청 종이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풀타임으로 학생비자를 받았으니 당연히 낮에 학교에 다니겠거니 했는데, 남편 근무시간이랑 겹치지 않는 시간표에 당혹스러웠다.
이럴 바엔 일을 빨리 구하자 싶어 한국에서 쓰던 커버레터를 업데이트하고 취업 포탈을 확인하며 내 직무에 학생비자로 일할 수 있는 회사들을 찾았다. 학생비자로는 학기 중에 주 2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데, 내 직무는 주 35시간에서 40시간 공고로 가득했다. 내 경력이랑 비슷한 회사의 주 20시간 자리에 지원했는데, 학생비자가 본인들 요건에 맞지 않는다며 1차 거절 메일이 왔다.
그 사이 개강을 하고 과제에 쓴 맛을 보면서 구직 생각은 뒤로 미뤄두었다. 더더욱 뉴질랜드에 올 때 편도와 왕복티켓 금액 차이가 없어 끊은 1월 한국행 티켓에 무얼 하기에도 애매했다. 8주 학기가 끝나고 나니 11월 말, 남편이랑 계획해 둔 크리스마스 여행까지는 한 달 정도 남았다. 워킹홀리데이를 오는 친구들이 많이 간다는 농장 일자리가 있다면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클랜드 근교에 있는 농장은 장기근속 가능자만 뽑고, 유명한 체리나 블루베리 농장은 한참 먼 곳에 있어 숙소비가 더 나올 상황이다.
한인 커뮤니티 웹사이트에서 단기근무 가능하다는 식품 공장 공고를 보고 바로 연락을 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초보자도 가능한 일이란다. 최저 시급이라고 해도 한국 돈으로 이만 원이니, 일주일에 2~30시간만 해도 크리스마스 경비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남편은 쉬라고 하다가 어차피 내 고집은 못 꺾을 걸 알아서인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주머니 둘이랑 간단하게 면접보고 다음날 낮 12시에 출근을 했다. 시키는 대로 머릿수건에 실리콘 장갑, 장화를 신고 식품 작업대에 들어가 팝콘치킨을 무쳤다. 4~60대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현장은 또 다른 세상, 그곳의 규칙과 서열이 있고 난 막내가 되었다. 정신없이 두 시간쯤 일하고 쉬는 시간에 다른 아주머니가 싸 온 부침개를 먹고 다시 오후 근무 두 시간을 하고 첫날 근무를 마쳤다.
다음 날엔 10시까지 출근하라고 했다. 10시부터 두 시간을 전날 만든 팝콘 치킨이랑 치킨가스 포장, 냉동식품을 포장하는 데도 땀이 난다. 나한테는 조리하는 거보다 포장하는 게 더 익숙하다. 그 와중에 나를 제외하고 가장 젊은 아주머니가 괜히 시비를 거는 게 느껴져 불쾌했다. 오후에는 음식 조리하는 일을 부지런히 따라 했다.
7년 넘게 책상 앞에서 앉아 일하다가 몸을 쓰려니 다리가 아프다가도, 10년째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고작 이틀 만에 힘들어 그만두겠다고 말이 안 나왔다. 작심삼일이라도 해보자 싶어 다음 주까지 해보고 결정하려던 중, 갑자기 일주일 공장 문을 닫는다는 문자를 받았다. 회사 대표가 상을 당해 한국으로 급히 귀국한다며, 한 주 쉬고 다시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남편이랑 얘기하고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남편한테는 민망해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대표에게 전화로 답을 하고는 뉴질랜드 첫 직장생활을 이틀 만에 마무리했다. 그다음 주 11시간 노동의 대가로 세금을 제외하고 200 뉴질랜드 달러를 벌었으니, 크리스마스 여행 때 괜찮은 와인 두 병 값 정도 되겠다.
크리스마스 여행을 기다리며 백수로 지내는 동안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니, 날 비자로 퇴짜 놓았던 회사의 공고가 다시 올라왔다. 이번에 지원한다면 과연 날 뽑을까 하다가도 1월에 한국 다녀올 계획을 굳이 바꿀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여기 구직 상황을 알았다면 11월 학기 끝나고 한국에 갔다가 크리스마스에 맞춰 돌아왔겠지만,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 지금 와서 바꿀 수 없다.
2월에 돌아와 일자리를 구하면 다음 학기에는 세 과목만 듣겠지만, 혹 이번에도 어렵다면 네 과목 수업 듣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되겠지. 화이트 칼라나 블루 칼라에 대한 차별이 없는 이곳의 노동환경은 선진국에 있는 걸 느끼게 한다. 긴긴 휴가 뒤에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제발 잉여인간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