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적응기

#8 두 번째 신혼살림과 서류 작업

by 뉴학생

도착한 날 남편이 일을 마친 후 나리타 공항에서 검색했던 중고차를 시승해 보러 갔다. 알고 보니 남편이 가장 먼저 연락을 해서 며칠 후로 시승 약속을 잡았는데, 나중에 연락 온 사람이 바로 시승을 해보겠다며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먼저 연락 온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도리일 것 같다며 차주분이 연락을 주셨다. 카페 사장님과 함께 약속장소인 공원에서 만나 시승운전을 했다.


남편이 운전면허증을 놓고 간 바람에 내가 운전을 하고 주차를 하던 중 휠을 긁어 난감했다. 다행히 차 상태가 너무 좋아 바로 차를 사기로 하고 나니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주문한 새 차가 생각보다 일찍 나와 차를 팔게 되었다며, 계약금을 먼저 보내고 3주 후 일정에 맞춰 차를 인수받기로 했다. 연식 대비 주행거리가 짧고 잘 관리된 벤츠로, 딜러가 판매하는 금액보다 훨씬 저렴했으니 우리에겐 너무 잘 된 일이었다. 친구에게 잘 타던 차를 넘기고 같은 연식의 다른 차를 뉴질랜드에서 몰게 됐다.

(전 차주님, 잘 관리하던 차를 넘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뉴질랜드는 모든 브랜드가 수입차이다. 우리 구입한 차는 벤츠의 막내 라인인데 정말 운이 좋게 비슷한 체급과 연식의 일본차나 한국차 보다도 좋은 가격에 인수했다.


차 인수하고 처음 드라이브 가던 날


가장 중요한 집은 남편의 임시 거처였던 카페 위층에 계속 머무르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시내에 자리 잡고 차 없이 사는 거였는데,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시내에 부랑자들이 늘어 사건사고를 일으킨다니 외곽 안전한 동네에 자리를 잡는 걸로 마음을 돌렸다. 그동안 2층에서 살던 사장님 부부가 이사를 간지 얼마 안 돼 방이 비어 있어 여기서 지내면서 적응부터 하기로 했다.


남편이 한 달 반을 지낸 창고 방에서 바로 앞방으로 이사하고 우리 짐을 풀고 나니 조금 안정이 되는 기분이다. 사장님 부부가 두고 간 침대에 우리 이불을 꺼내고, 쇼핑센터를 오가며 당장 필요한 물건들을 몇 가지 사서 채워 넣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여행용 가방들과 박스를 풀었더니 익숙한 냄새가 난다. 신혼집에서 이사를 나오고 지난 몇 달간 꽁꽁 싸두었던 우리 신혼살림.



뉴질랜드에 온 초반 남편이 일하는 동안 혼자 시내에 가서 서류 작업을 했다. 현지 운전면허증, 은행계좌 개설, 세금번호 발급까지 나를 증명하는 과정들이다. 영사관 공증을 받아 현지 운전면허증을 신청하는데, 여권에 함께 기재된 남편의 성 (Spouse of XXXX)으로 딴지를 걸어 두 번째 방문만에 겨우 신청을 마쳤다.

처음 운전면허증 교환하러 갔던 날, 결국 실패했다.


현지 은행 계좌는 한국에서 진작부터 메일을 보냈는 데 결국은 열리지 않아 뉴질랜드에 도착하고 한 달 만에 열었다. 새로 만드는 건 예약하고 서류 준비하고 복잡했지만, 11년 전 사용했던 은행은 혹시나 하고 쇼핑몰 지점에 들어가니 계좌를 바로 활성화해 주었다. 일을 할 것에 대비해 세금 번호(IRD number)는 시내에 있는 대행사 대신 버스를 두 번 타고 국세청에 가서 신청했더니 놀랍게도 당일로 발급이 됐다.


익히 들어온 대로 거의 모든 절차가 느리다. 나한테 필요한 일들이라 열심히 따르고 있지만 운전면허나 은행업무에는 인내심을 요한다. 원래도 급한 성격이라 답답하면서도 여기서 지내려면 여기 법도를 따를 수밖에.


다른 날엔 유학원 사무실에 가서 현지 담당자를 만났다. 뉴질랜드는 학교에서 유학원에 수수료를 주는 구조라 내가 직접 학교에 지원하는 데 이점이 없어 유학원을 꼈다. 하루는 학교 담당자를 만나 첫 학기 수업에 대한 안내를 받아 수강신청을 마치고 입학 준비를 했다.


국경이 닫힌 동안 뉴질랜드 현지에서 여러 가지 정보를 전달해 주던 중국인 친구를 드디어 만났다. 11년 전 같은 홈스테이에서 지냈던 친구로, 오랜만에 만나도 한결같고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전 계획대로 2월에 학기를 시작했다면 좀 더 자주 만나 저녁도 같이 먹었을 텐데, 내 일정이 미뤄지는 사이 친구는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막막한 시작이지만 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도 해볼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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