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 오클랜드에서 웰링턴 가는 길

#13 2022 연말 여행기 #1

by 뉴학생

학교 방학 후 길고 지루한 5주를 보내고서 드디어 남편의 방학이 왔다.


노동법이 센 곳에 있다 보니 커피 일을 하는 남편에게도 연말연시 열흘의 휴가가 생겼다. 한국에서 남편의 연말은 택배 접수 마감 전 더 바쁘게 일을 쳐내야 하는 시기였다. 직원을 일하게 하려면 휴일 근무 수당뿐 아니라 대체 휴일을 반드시 줘야 하니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있는 연말이면 대부분이 휴일에 들어가는 뉴질랜드. 일부 대기업들만 비용을 감당하며 휴일 영업을 한다. 남편은 12월 24일까지 바쁘게 일하고 우리는 26일부터 6박 7일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 여행은 오클랜드에서 출발해서 웰링턴에서 이틀, 마틴보로에서 이틀, 네이피어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웰링턴은 11년 전 혼자 다녀온 도시였다. 금요일 밤에 출발해 토요일 아침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가 우중충한 날씨에 열심히 걸어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남는 도시. 한창 ‘Occupy Wallstreet’ 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을 때 뉴질랜드에서 만났던 한 친구는 웰링턴 시청 앞 텐트에 기거하면서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후 내 기억 속 웰링턴은 국회의사당, 수도와 함께 텐트가 깔려있던 동네로 남아있다.


두 번째 목적지 마틴보로는 우리가 한국에서 국경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때 알게 된 "Ata Rangi (아타랑이)“ 와이너리가 있는 곳이라 가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아타랑이 와이너리를 가기 위해 마틴보로를 넣고, 근처의 큰 도시인 웰링턴을 목적지에 추가했다.


마지막 네이피어는, 12월 31일을 바다에서 보내고 싶어 찾아낸 동네였다. 매년 새롭게 떠오르는 일출을 봐왔기에, 다섯 시 일출을 보는 건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바닷가에 있으면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뉴질랜드에서 꽤 큰 도시이니, 휴일에도 문 여는 곳들이 있고 오클랜드까지 돌아가는 길도 멀지 않다.

2022 연말 여행 경로, A: 타우포 B: 웰링턴 C: 마틴보로 D: 네이피어 (출처: 구글맵)




웰링턴 까지는 쉬지 않고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 가는 길에 다른 도시에서 쉬어가며 열 시간 정도로 계획을 잡았다. 오클랜드를 출발해 네 시간을 달려 타우포에 도착했다. 타우포에는 내가 다시 가고 싶던 “Huka Falls (후카폭포)”가 있다. 11년 전 학원 친구들과 갔던 타우포와 통가리로 2박 3일 여행에서 찾았던 곳이다.

타우포에서 가까운 후카폭포 (Huka Falls)

산책코스를 걸어가면 나오는 거대한 하늘색 폭포가 압도하는 곳이라 다시 가보고 싶었다. 폭포를 위해 길을 돌아가야 하니 툴툴거리던 남편도 도착해서 폭포를 보고 이런 곳이었으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냐며 사진을 부지런히 남겼다. 예전 사진과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니 그때 그 친구 중 몇 명이 바로 좋아요를 누른다. 다들 그리운 어느 날의 한 장면이었겠지. 폭포 근처에서 점심으로 챙겨간 샌드위치를 먹고 타우포 시내에서 화장실을 들러 다시 길을 떠났다.


타우포 호수에서부터 남편은 통가리로 산을 열심히 찍어댔다. 남편은 반지의 제왕 덕후인데 이번 여행지와는 경로가 맞지 않으니, 가는 길에 멀리 서라도 구경하고 싶은 눈치다. 타우포에서 내려가는 길에 통가리로 산이 보이는 사막지대에 멈춰 사진을 찍었다. 이번 여행 전 호비튼 빌리지라도 1박 2일로 다녀오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여건이 되지 않아 다음으로 미뤄두었다.

통가리로 산(Mount Tongariro)이 보이면서부터 남편은 계속 마운트 둠과 모르도르를 찾았다...


운전대를 번갈아 잡아가며 열한 시간 만에 웰링턴에 도착했다. 나름 장거리 운전인데 뉴질랜드에서 산 자동차에 있는 크루즈 컨트롤 기능 덕을 톡톡히 봤다. 초기 방식의 크루즈 컨트롤이라 일정 속도로 가게 설정을 할 수 있는 정도이고, 코너에서 속력을 줄이거나 앞 차와 간격이 가까워지면 브레이크를 밟는 건 운전자의 몫이다. 왕복 2차선에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추월차선이 전부인데도 도로에 차가 적어 같은 속도로 계속 운행하는 게 가능한 뉴질랜드이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생각보다 우리 둘 다 컨디션이 좋아 걸어서 시내를 구경했다. 배는 고픈데 연휴라 호텔 근처에 문을 연 음식점이 없다. 마트에서 산 즉석식품으로 저녁을 때우려다 이마저도 너무 맛이 없어 첫날부터 결국 인스턴트 떡볶이를 꺼냈다.


웰링턴은 뉴질랜드의 수도라 다양한 커피 회사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가 여행한 연말에는 문을 연 카페가 몇 없어 다음날 아침으로는 오클랜드에서 자주 보던 “Mojo”에 갈 수밖에 없었다. 부두 옆에 있는 곳이니 오클랜드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다. 걸어서 부두, 박물관, 국회의사당, 세인트폴 교회 등을 돌아다녔다.


예전에 다녀봤던 곳이라지만 벌써 11년이나 지났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게 많지 않아 새롭게 느껴졌다. 여전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흐린 웰링턴 날씨. 한참을 걸어 다니다 보니 체력은 바닥나고 온몸이 밀가루를 거부하는 게 느껴져 늦은 점심은 쿠바 스트리트 근처 말레이 음식점으로 갔다. 칼칼한 음식을 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은 느낌.


호텔로 돌아가 한숨 자고 헬스장에서 간단히 운동하고, 연휴에도 문을 여는 맥주 브루어리를 가기로 했다. “Garage Project”는 오클랜드 Kingsland에도 매장이 있는 곳이지만 웰링턴에서 가보기로 했다. 한국의 스몰비어 가게처럼 안주는 간단했고 대신 열 종류가 넘는 맥주 탭이 매달려 있다. 우선 샘플러로 네 종류를 맛보고 각자 원하는 걸로 시켜서 마셨다. 요즘 내 취향은 Hazy IPA다. 우중충한 도시로 남았던 웰링턴의 기억이 청량감으로 덮이길.

Garage Project Te Aro Tap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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