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해외 생활 중 한국 방문기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떠날 무렵 왕복과 편도 비행기표 금액이 20만 원 밖에 차이가 안나는 게 이번 한국행의 이유였다.
나중에 뉴질랜드에서 일을 하게 되면 한국을 오가는 게 쉽지 않을 테니, 학생이고 여유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다. 그 사이 비행기 표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 스케줄을 바꿀 수 없는 표가 되었다. 때마침 남편이 일하는 카페의 한국산 커피머신이 고장 나서 수리할 겸 수화물로 추가해서 들고 가기로 했다.
불과 몇 달 전 뉴질랜드에 들어올 때만 해도 한가했던 공항이 북적거린다. 빈자리가 있으면 앞에 넓은 자리로 바꿀 수 있을까 물어봤더니 추가금액을 내야 한단다. 아쉬운 대로 인기 없을 뒤쪽 복도 자리로 했더니 옆자리가 비어 그래도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보안 검색대에서 선물용으로 산 페타치즈가 액체라고 폐기되고, 체크인 수화물 무게초과로 배낭에 넣어둔 커피머신 파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비행기에 탔다.
삼십 분 늦게 출발한 비행기는 제시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열한 시간 낮 시간 비행은 뒷자리 두 어린이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으로 스도쿠를 하고, 영화에 기내식을 먹으며 금방 지나갔다. 뉴질랜드는 진작에 마스크를 벗었는데, 한국은 아직 마스크가 의무였다. 터미널에서 형부 차를 타고서야 마스크를 벗어 한국 냄새를 맡았다. 여름에 떠났다가 겨울에 돌아왔으니 오랜만인 듯 익숙한 냄새다. 언니네 집에 도착하니 조카들은 자고 있고, 언니, 형부랑 귀국기념 술잔을 기울였다.
다음날 아침 뉴질랜드 시차대로 깨서 누워있는데 방문이 살그머니 열리더니 일곱 살 큰 조카가 옆에 와서 눕는다. 자는 척을 하다 꼭 안으니 웃는 내 조카. 조카들 등원시키고 언니 차로 부모님 집으로 갔다. 똥강아지 하루도 그대로이고 그 사이 공사한 싱크대랑 현관 옆 방만 새롭다. 장 보러 갔던 엄마, 아빠가 돌아왔다. 잠깐 여행 갔다가 집에 무사히 돌아온 느낌.
4주 간의 한국은 짧게 지나갔다.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남편 없는 시댁과 시할머니댁에 가고,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관세 때문에 최소한으로 가져온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마시는 게 꿈같았다. 남편이랑 같이 왔으면 더 즐거웠겠지만, 혼자서도 바삐 움직였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카페에 가니 사장님들이 독수공방 할 남편에게 전해주라며 커피를 선물로 주셨고, 시간에 쫓겨 못 간 부산 카페 사장님은 택배로 커피를 잔뜩 보내주었다.
마지막 날은 언니 집에서 자고 가기로 하고 비행 전날 부모님 집에서 출발하는데 괜히 울컥했다. 어차피 영상통화로 계속 귀찮게 볼 건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한국에 두고 갔던 짐을 거의 챙겼고, 이제 내 짐은 별로 없어서 더 감성적이었던 걸까. 어쨌든 언니네 집에서 출발하기로 결정하길 잘했다.
저녁 비행기라 최후의 점심 만찬(?)을 언니랑 먹기로 했다. 내 한국행과 언니의 방학이 겹쳐서 끈끈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나도 언니도 방학 끝,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낮술을 곁들여 초밥 오마카세를 먹고 서점에 들러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골라 터미널로 갔다.
한국에 올 때 와인 빼고 내 짐은 15킬로 남짓 가져왔는데, 가져가는 짐은 50킬로가 훌쩍 넘는다. 시외할머니표 깻잎장아찌부터 카페 사장님들이 챙겨준 커피, 질 좋은 수건과 저렴한 레깅스까지, 뉴질랜드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을 차곡차곡 담았다. 뉴질랜드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호주 시드니 환승이라 짐이 연결 안 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클랜드까지 연결이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던 사람들에게 전화통화와 메신저로 인사를 하고 방콕에서 한국에 올 때 탔던 A380 2층 자리에 앉았다. 괜히 허전한 느낌이다.
아침 일찍 시드니에 도착해 공항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오클랜드행 비행기를 탔다. 남편이랑 같이 왔다면 하루 이틀정도 시드니를 구경했을 테지만 짐도 한가득이고 혼자라 다음을 기약했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니 열흘 전 폭우 피해를 입어서인지 승객은 많고 공항 처리속도는 느렸다. 고장 난 출입국 심사대에 한참을 기다리고 추가로 검역심사는 두 시간 가까이 걸려 통과했다. 그 사이 퇴근하고 마중 나온 남편이랑 입국장에서 만났다.
제주 한달살이 중 육지를 다녀가던 때와 겹쳐 보였다. 이제는 여기 지내면서 공항으로 데리러 온 남편. 떨어져 지내면서 오히려 연락을 더 많이 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어 특별히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해바라기 꽃과 블루베리, 초콜릿을 사두었다. 남편 육 년 차라며, 이제는 내가 좋아할 걸 챙겨 두고 기다렸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을 풀었더니 꿈에서 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