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텀 방학 근교 마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MBA과정은 일 년에 8주 수업이 네 텀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텀 사이에 열흘정도 짧은 방학과 연말에 삼 개월의 긴 방학이 있다. 4월 말 짧은 방학에 뉴질랜드 가을을 즐기러 어디든 여행을 가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원래 여름은 건조하고 겨울은 습하다는 뉴질랜드, 올해 여름에는 폭우가 내렸고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 2주 내리 비가 내리고 있다. 남편이 일하는 카페 사장님이 미리 얘기하면 근무표 조정을 해준다고 했는데 결국 날씨 때문에 여행을 포기했다. 4~5월에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단풍이 이쁘다기에 가보고 싶었는데.
그나마 남편 평소 휴무일인 월화 이틀이 데이트라도 할까 하는데 월요일엔 그야말로 폭우가 내렸다. 그냥 집에 있기 억울해 시내 중심가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차를 몰고 브라운스베이로 갔다. 다행히 브라운스베이에 도착할 즈음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잠깐 나와서 기분이 조금 풀렸다.
화요일은 괜히 남편한테 어디라도 가자고 투정을 부리다가 목적지도 모르고 따라나섰다. 차에 시동을 켜고 보니 남편의 구글맵에는 해밀턴에 한 카페가 찍혀 있다. 뉴질랜드에서 알게 된 친구가 몇 달 전 인수한 카페. 해밀턴은 이전에 다른 카페 가느라, 연말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쉬어가며 두 번 가본 도시이다. 두 시간을 걸려 카페에 도착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나름 큰 도시인데 공영주차장 주차비를 안 받는다는 데 일단 놀랐다. 오클랜드와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느낌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동네에 낙엽이 흩날리니 여행 온 기분이 제법 나는 해밀턴.
커피만 마시고 떠나기 아쉬워 해밀턴 가든 (Hamilton Garden)에 들러 보기로 했다. 이전에 해밀턴에 왔을 때 우연히 마주친 친구가 소개해주었던 곳인데, 당시에는 여름이라 덥기도 하고 휴일이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아 다음을 기약했었다. 평일 오후에 선선한 날씨라 걸어 다니기 좋을 것 같았다.
들어가 보니 일본, 중국, 인도, 이탈리아, 모던 미국 정원이 나뉘어 각 특색에 맞춰 꾸며져 있다. 작은 세계여행을 하는 느낌. 오래전에 친구들이랑 다녀온 순천만정원이 생각났다. 한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이런저런 사진을 남겼다.
오클랜드로 돌아오는 시간 걱정에 절반정도만 보고 발걸음을 돌렸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고는 지인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문”은 어디에 있냐며, 내가 명소를 놓쳤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빠른 걸음으로라도 다 돌아볼걸. 그래도 멀지 않은 곳이니 다시 구경 갈 기회가 생기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와이카토 대학에 방문할 계획이 있어 뉴질랜드에서 볼 수 있겠다는 기약을 한 지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해밀턴 사진에 타이밍 좋게 댓글을 남겼다. 해밀턴에 오게 되면 꼭 들러 보라며 답글을 달았다.
여행 다닐 때는 여러 정보를 찾아보고 열심히 돌아다니는데, 막상 뉴질랜드에 살다 보니 가는 곳만 가게 된다. 몇 년 전 남편이랑 지상 서울역을 갔다가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우리에게 서울역은 1호선과 4호선 환승역인데, 밖에서 역을 보니 느낌이 새롭고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고. 시간 날 때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오클랜드랑 근교를 돌아다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