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언제쯤 우리 집에 살 수 있을까
2015년 겨울,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언니의 결혼과 부모님의 귀촌 결정으로 자취를 시작했다, 아니 독립을 당했다. 부모님의 이사가 결정되고 부랴부랴 원래 살던 곳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 11평(전용 28 제곱미터) 월세 아파트를 계약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 42만 원인 아파트는 출퇴근하기 나쁘지 않은 위치에 있었다. 계약하는 날 신발장을 달아주겠다고 하던 집주인은 집에 맞지도 않는 커다란 가구를 들여놓으려다 아빠의 호통을 듣고서야 물러섰고, 내가 이사를 나오던 날엔 원래보다 많이 깨끗하게 만든 집의 청소비를 내놓으라는 걸 이삿짐센터 사장님의 도움으로 정리했다.
2년 계약이 끝나고 같은 아파트단지에 있는 14평 집에서 전세로 남편과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관대한 임대사업자 집주인을 만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바꾸고 초반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을 때 원만하게 해결을 할 수 있었고, 첫 계약 만료 후 뉴질랜드로 떠날 준비를 하느라 월세로 바꿔 달라는 요청도 흔쾌히 들어주었다. 부동산 정책의 변화로 집주인이 바뀌었고 다행히 새로운 집주인도 우리 편의를 봐주어 우리가 원하는 일정에 맞춰 이사를 나올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 넘어와서는 카페 위층에서 살고 있다. 지난 7년 정도, 다른 사람 집에서 지내면서 ‘우리 집에서는 도대체 언제쯤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로 발이 묶여 일정이 밀리는 동안 우리는 운이 좋게 20평대 초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 원래 자산이었으면 엄두도 못 내었을 테지만, 희망퇴직 위로금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뉴질랜드에서 필요한 자금을 제외하고 중도금까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 아직 아파트는 공사 중이고 우리는 해외 생활 중이니 우리 집에서 언제 살 수 있을지는 까마득하다.
최근 남편이랑 다음 집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기차역과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어 뉴질랜드에서 드물게 대중교통이 편리한 동네이다. 불편한 점은 화장실이나 부엌을 매장과 공유하는 점과 일상적인 소음이다. 좁더라도 우리의 공간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자꾸 올라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워낙 임대료가 비싸다 보니 집을 렌트한 다음 재임대를 주는 “플랫”이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도 일종의 플랫에서 지내고 있는 셈이다.
미국식 영어의 “apartment"를 이곳에서 ”flat"이라 부르기도 한다. 흔히 플랫이나 플랫메이트를 구한다고 하는 경우, 방을 렌트하고 부엌이나 화장실, 세탁실 등 다른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다르게 “월”이 아닌 “주” 개념으로 움직인다. 급여도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 번씩 들어오고, 우리가 다니는 헬스장도 일주일 단위로 자동이체가 된다. 둘이 살기 적당한 방 하나에 거실 하나인 집은 최소 일주일에 3~40만 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공과금이 추가되면 주거비만 한 달 기준 200만 원이니, 현재 외벌이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원래 계획대로 내 구직이 되었으면 쉬웠을 결정이라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어떻게든 일찍 졸업해서 구직시장으로 빨리 나올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봤지만, 지금으로서는 남은 1년 학교 열심히 다니고 내년 이맘때 취직을 하는 게 최선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 살고 있는 플랫에서 이사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굳어졌다. 한국에 집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괜스레 언제쯤 우리 집에 살 수 있는 걸까 하는 넋두리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