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파트너 문화

#28 제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by 뉴학생

언어 외적으로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왔구나 싶은 부분은 ‘파트너’라는 관계이다. 작년 MBA 첫 학기 수업 첫날, 바로 옆에 앉은 친구와 자기소개를 하고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에게 짝꿍을 소개하는 활동을 했었다. 내 차례가 되어 “My partner C is…”로 시작한 소개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었다는 그땐 미처 몰랐다.


우리는 흔히 남편이나 아내, 혹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로 규정하는데, 이곳의 파트너라는 개념이 모든 걸 포괄하기도 어느 부분에서는 더 넓게 쓰이기도 한다. 뉴질랜드의 전 총리 저신다 아던의 경우 임기 중 혼인 관계가 아닌 파트너와 자녀를 낳고 이후 결혼을 했다. 당시 한국에 있던 나에게는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여기서 종종 마주하는 장면이다. 지난 학기 수업의 일부로 가족과 지인을 초대했던 날,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파트너 여럿을 소개받았다. 작년에 결혼했다고 하던 친구는 한국 기준으로 ‘결혼식’만 늦게 했을 뿐 아내와 십 대 딸 둘을 데려왔고, 파트너와 아이를 데려온 친구, 동성 파트너를 데려온 친구, 현재 파트너이지만 곧 결혼 예정인 친구까지 다양했다.


한국에서는 결혼 후에 고민할 만한 자녀 계획 같은 주제도, 파트너와 의견이 맞지 않아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내 머릿속에 고정관념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남편에게 우리가 결혼하기 전 이 문화에서 오래 살았으면 우리는 과연 결혼을 했을지 혹은 파트너로 지냈을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어쨌든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었을 거다.




뉴질랜드로 오기 몇 달 전, 오랜만에 지인 J를 만났다. 해외 생활을 하는 J가 코로나로 발이 묶여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온 김에 만난 자리였다. 그 사이 결혼 소식은 전해 들었는데 SNS를 활발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 결혼사진을 본 적이 없었다. 자랑 좀 해보라며 옆구리를 찔렀더니 “OO아, 사실은 와이프가 아니라 허스밴드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순간 당황했다. J는 이번에 나를 만날 때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나왔다고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축하할 일인데 내가 당황한 게 드러났구나 싶어 얼른 사과하고 다시 축하를 했다.


작년에 수업을 같이 들으며 내년에는 결혼을 계획 중이라는 얘기를 했던 L을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났다. 옆에 있던 본인 파트너를 소개하는데 작년에 결혼 얘기를 들으며 너무 자연스레 이성을 생각했구나 싶다. 이성연애가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이성애자인 내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오래전 친구들과 매체에서 동성연애 중이라는 걸 밝힌 잘생긴 해외 남자 모델을 보며, 저들의 선택으로 여자 두 명은 잘생긴 남자와 연애 기회를 잃었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막연한 타자의 이야기였다면 지금은 내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인정하고 말고는 그들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으니 그저 축하할 밖에.


이번 학기 “다양성과 포용(Diversity and Inclusion)”을 배우며 새삼 배타적으로 살아온 것 같아 반성을 많이 하고 있다. 다양성 가득한 환경에 나를 계속 노출하다 보면 내 고정관념도 점점 옅어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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