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맑은 공기 반대편 어두운 이야기
뉴질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금방이라도 호빗족이 튀어나올 것 같은 초록색 대자연. 아쉽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대도시라 화려한 조명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뉴질랜드는 기나긴 코로나 락다운과 호주에서 추방된 뉴질랜드 국적의 범죄자들로 인해 치안이 예전 같지 않아 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래저래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미친놈들이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국은 최근에 마약이 문제가 되고 있고, 뉴질랜드는 점점 대담해지는 좀도둑 문제가 심각하다. 인력이 늘 부족한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공서비스 부문의 공백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램레이드(Ram-raid)라고 불리는 주로 훔친 차로 귀금속이나 주류판매점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범죄에 사용하기 위해 차 자체를 훔쳐가거나 비싼 차를 훔쳐 부품을 따로 팔고 껍데기만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차 안에 있는 귀중품을 훔치기 위해 차 유리를 깨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간혹 저렴한 옷을 차에 두었다가 유리창 수리비가 더 나오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기는 내 집에 누군가 들어와 물건을 훔쳐가 경찰에 전화를 해도 당장 상해를 입지 않으면 출동까지 몇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전화로만 접수하고 진행상황에 대한 공유는 따로 없다고 한다. 연 초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우리가 지내고 있는 카페 유리창이 길거리 행인들의 싸움으로 깨지는 사고가 있었다. 2층에 있던 남편이 놀라 뛰어나가보니, 한 명은 도망가고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다친 사람을 도망가지 못하게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 경찰이 출동해 다친 사람을 데려가고 집에 있던 카페 사장님들이 나와 급하게 현장을 수습했다. 고치는 건 피해 입은 사람의 몫, 다행히 건물 보험으로 커버가 됐다.
몇 주 전에는 카페 손님인 척 매장에 들어와 엉뚱한 요구를 하며 돈통을 노리던 아줌마를 사장님이 쫓아내기도 했고, 오늘 아침에는 이웃 여행사를 털어간 도둑 중 한 명을 경찰이 잡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며칠 전 어떤 사람이 들어와 이런저런 질문으로 정신을 쏙 빠지게 한 뒤 열쇠를 훔쳐 두었다가 가게가 닫았을 때 문을 열고 들어와 현금 3000달러를 훔쳐 달아났다고 했다.
엊그제는 수상한 차량을 추격하던 경찰차가 버스정류장을 들이받아 전복되는 사고가 우리 집 바로 근처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경찰차 여러 대가 우리 집 앞 도로를 막아 영문도 모른 채 겁을 먹었다. 남편이 일하는 매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오는 공공서비스(경찰, 소방관, 응급구조사) 직원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하면서 소소한 얘기를 전해 듣게 된다. 유니폼을 입고 들르는 경찰관이 가게에 들어설 때면 한 번씩 말을 걸고 불편하게 하는 동네 부랑자들이 슬금슬금 도망가는 게 속 시원하다.
최저임금이 높은 곳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에 고된 노동강도를 견뎌야 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간혹 커피를 기다리는 1분 남짓한 시간에도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커피를 받지도 못하고 바로 매장을 떠나간다.
슬프게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뉴질랜드와 그동안 살아온 대한민국이 안 좋은 점을 닮아가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뉴스 기사에는 마을버스 기사님을 구하지 못해 버스 간격이 길어졌다고 하고, 소아과에는 의사가 부족해 응급실이 점점 없어진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비슷한 일을 먼저 겪고 인력난이 전체 산업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한국도 비슷해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프지 않기 위해 나름 운동도 꾸준히 다니고, 낮에도 가급적이면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과민반응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무탈한 게 제일이라며. 남편은 귀찮을 법도 한데 늦은 시간에 수업을 마치는 나를 데리러 시내로 나온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결국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뉴질랜드는 여전히 세계에서 안전한 나라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의 안전과는 개념이 다르기도 하고,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글을 오래전에 써두고서는 불편한 이야기를 연달아 올리기 부담스러워 브런치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 사이 뉴질랜드 오클랜드 CBD에서는 두 번의 총격 사건이, 한국에서는 세 번의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 결국 어디든 안전한 곳은 없다.
*** 뉴질랜드는 총기에 대한 규제가 있는데, 규제 시행 전 취득한 총기에 대해서는 정확한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교육을 받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총기를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