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영어이야기
최근에 온라인 화상영어 수업을 결제했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부터 남편을 채근하며 영어공부를 시키고 난 한참 후에 학습을 시작한 이 상황은 아이러니다.
우선 이번 학기에는 학교를 일주일에 한 번만 가게 되었다. 세 과목 중 하나는 온라인 과정이고, 나머지 하나는 교수와 일주일에 한 번 1대 1 짧은 미팅으로 대체된다. 그나마 학교 가는 날에는 사람들을 만나 스몰토크를 이어가지만 수업이 없는 날에는 한국어 원어민(?) 남편과 한국어를 사용한다. 지난 학기의 나를 분석해 보니, 영어에 대한 자신감 하락과 일을 하지 않는 상황에 위축이 되어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는 없겠지만, 원인이 되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올리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뉴질랜드에서 학교 다닐 만큼이면 영어 잘하지 않나요?”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졸업 후 뉴질랜드에 오기 전까지 외국계 회사들에서 일을 하며 일상적인 업무 영어를 쓰고 살아왔다. 일을 하면서 내가 갑의 입장일 때는 내가 어떤 영어를 구사하던 애가 타는 건 상대방이라 거지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이해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반대의 상황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걸 끊고 반박하지 않으면 회의록에는 우리가 늦은 스케줄을 이해하거나 비용을 부담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기술을 익혔다.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니며 느끼는 영어는 다른 사람 말을 잘 이해하는 게 70%이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내가 한국에서 흔히 접하던 미국식 영어나 유럽계 사람들이 구사하는 영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구사하는 키위 영어도 그 일부이고, 인도계나 중국계, 라틴계 사람들이 구사하는 악센트에 슬랭까지 더하면 “잘 알아듣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신기한 건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어떤 악센트이던 잘 알아듣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 외에 영어로 과제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종종 받는데, 참 다행히도 도움을 주는 다양한 도구가 있다. 챗GPT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가장 도움을 많이 받는 건 문법을 교정해 주는 AI툴이다. 한국인에게 가장 취약한 관사(article – a/an/the)부터 시작해서 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교정을 해준다. 내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과제를 일차적으로 영어로 하되 교정 툴로 표현을 수정하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첨삭 사이트를 통해 이차적인 피드백을 받아 과제를 완성한다. 현재로서는 학교 생활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다.
다시 영어 수업 얘기로 돌아와서, 뉴질랜드에 있으니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영어가 자연스레 늘지 않나 하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여기서 차이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과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서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위주로 내가 느낀 점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내가 잘못된 표현이나 문법을 구사할지언정, 대화를 이어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모국어로 쓰는 한국어도 늘 맞는 표준어를 구사하기보다는 서로 통용되는 단어를 사용하면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혹시 모르는 단어가 튀어나오더라도 대화에 중요한 부분이 아니면 그냥 넘기게 된다.
영어 수업에 대한 목적은 일주일에 한 시간이라도 영어로 집중해서 말을 하며 잘못된 표현을 사용할 때 강사가 고쳐주고,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메모를 해두었다가 복습을 하는 것이다. 2주간 수업을 해보니 표현에 대한 수정이나 말을 하게 하는 훈련을 하고 싶던 내 목적에는 꽤나 잘 맞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다만 플랫폼 체계로 운영되다 보니, 어떤 강사를 만날지 그 강사가 나랑 맞는지는 직접 부딪혀야 하는 한계도 있다.
이번 주 학교 수업을 갔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아프리칸스 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뉴질랜드에서 10년 이상 살아온 친구이다. 일단 영어보다는 자신감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구사하는 영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말을 하다 보면 이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 학기 MBA 디렉터와의 대화를 떠올리니, 결국 뉴질랜드에서 가장 취업이 어려운 사람은 동아시아 여자라고 했다. 인종의 관점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숨기느라 오히려 말을 아끼는 경향이 있는데, 적극적으로 본인을 어필하는 이곳에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나를 알려야 하는 곳이다 여기는.
결국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영어는 내 자신감이랑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지하까지 내려갔던 내 자신감을 올리기 위해 영어는 수단이자 도구이다. 뉴질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앞으로 영어 때문에 울고 웃을 일이 많이 펼쳐지겠지만, 지금 여유가 있는 시기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