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뉴질랜드에서 맛있는 쌀 찾기
갓 지은 밥에 갓 구운 햄 한 조각 얹어 먹는 상상을 하면 침이 고인다. 잡곡밥을 더 좋아하면서도 갓 지은 윤기 흐르는 밥의 유혹은 헤어날 수 없다.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점 중에 하나는 바로 밥이었다.
카페에 사는 동안은 10인분 전기밥솥 가득 밥을 해두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데워 먹곤 했다. 쌀은 카페 식구들과 함께 먹다 보니 마트에서 보이는 비슷한 쌀로 사두곤 했는데, 주로 호주산 미디엄그레인 (medium grain)이나 베트남산 일본 브랜드 히나타 쌀을 주로 골랐다. 중고등학교 시절 커다란 급식판에 쪄서 나오는 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남편이랑 이사 올 때 성주신을 뫼신다며 새로 산 밥솥을 집으로 가장 먼저 들여오고서는 정작 마트에서 이전에 먹던 것과 비슷해 보이는 쌀로 대충 고른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지 몰랐다. 이전에 사던 미디엄그레인이 보이지 않아 쌀이면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바로 옆에 있던 다른 브랜드의 미디엄그레인 10KG를 샀기 때문.
새로 산 밥솥에 새로 산 쌀, 첫 밥을 하고서 남편과 동시에 말을 잃었다. 따뜻할 때는 그래도 괜찮은 듯하던 밥들이 플라스틱 통에 소분하려는 순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찰기는 없고 금방 딱딱해지는 식감에 당황스럽다. 이래서 주변 사람들이 쌀을 잘 골라야 한다고 했었던 거구나. 결국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볶음밥에 죽을 끓여 먹으면서 둘이서 두 달 반에 걸쳐 10KG 쌀을 다 먹어치웠다.
비싸더라도 한인마트에서 한국쌀을 사려고 찾아보아도 미국에서 재배한 한국품종뿐이었다. 친구집에 놀러 가는 길에 막걸리 사러 들렀던 알바니의 리큐어 샵에서 베트남산 자포니카 쌀을 팔고 있어 눈여겨봐 두었다. 사장님은 한국 쌀 맛이랑 비슷하며 가격도 너무 좋다며 적극 홍보 중.
지난주 드디어 쌀통이 비어가길래 남편을 채근해서 알바니로 가서 쌀을 사 왔다. 조심스레 밥을 지었는데 맛있다. 한국에서 먹던 여주 쌀에 비할 건 아니지만, 두 달 반 날아다니던 밥을 먹던 설움에서 벗어난 기분. 남편이랑 평소보다 밥을 더 먹고 저녁 설거지를 했다. 한동안 이래저래 살이 빠졌었는데, 새로 사 온 쌀 덕분에 바로 회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