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생존형 헬스 입문기
연애시절부터 남편이랑 나는 여행을 좋아했었다. 우리 연애의 시작도 여수 향일암에서 내려오는 길이었고, 부산이나 제주 같은 국내여행지부터 몽골 미국 등 해외여행까지 시간 날 때마다 돌아다니곤 했다. 둘 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건 아니니 데이트 통장을 만들어 평소에 아껴 두었던 돈을 휴가철에 몰아 쓰는 방식이었다. 그 외에 취미 생활이 있다면 다양한 카페를 돌아다니는 거라 다른 준비 없이 어디를 갈 지만 정하면 된다.
뉴질랜드에 오기 전 코로나가 퍼지고 본격적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리 여가가 많이 달라졌다. 바깥돌이와 바깥순이가 집에만 있으려니 몸이 뒤틀렸다. 난 엄마 책장에서 책 몇 권 가져와 읽고, 남편은 TV로 영화를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평소 그나마 우리가 좋아하던 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곁들이는 것이었다. 남편도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14평 집에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부모님 집으로 가서 마당이라도 마음껏 누리고 엄마밥을 실컷 먹었다.
남편은 평소 다니던 헬스장을 못 다니게 하니 답답해하길래 큰맘 먹고 풀업바(턱걸이 기구)와 20킬로 조립형 덤벨세트를 주문해 주었다. 우리 집에 운동기구들이 들어오자, 그간 혼자 헬스장을 다니며 커플이 같이 운동하는 게 좋아 보였 던 지 나를 계속 운동으로 끌어들였다. 집에 거대한 물체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끌려가서 매달린 것도 잠시 코로나를 앓고 이사를 하며 다시 멀어졌다.
기다림의 끝 뉴질랜드에 살면서 우리 여가생활에 반복적인 일상이 생겼다. 예를 들면 일주일에 세 번 헬스장에 가고, (날씨 좋은) 토요일이면 바닷가에 가서 피시앤칩스를 먹고, 남편 퇴근 후 나 수업 없는 날 날씨가 좋으면 뒷동산에 오르거나 드라이브를 간다. 남편의 일과 내 학교 생활로 인해 여행은 예전만큼 갈 수 없지만 연말에 놀러 가기 위해 통장을 조금씩 채워 놓는 중이다.
이 중에서도 헬스(근력운동)는 만 33년 동안 살면서 내 인생 최대 근육량을 기록하게 한 장본인이랄까. 20대 초반 처음으로 인바디(체성분)를 측정해 본 이래로 내 몸은 늘 근육 부족한 마른 비만이었다. 엄마를 닮아 다리에 살이 안 찌는 체형이라 남들이 보기에 늘씬해 보이지만 배에 살이 몰려 있다. 건강검진에서 비만 결과가 나온 걸 가까운 지인에게 얘기하니 “네가 왜?”라는 반응이지만 내 몸이 이런 걸 어쩌나. 어릴 적에 수술한 어깨로 운동은 늘 나에게서 먼 친구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작년 배낭여행 중 필요 이상으로 좋았던 태국의 거의 모든 숙소들에는 꽤나 좋은 운동 기구들이 있었고, 결국 나를 운동의 세계로 안내했다. 여행 다닐 때야 다른 게 할 게 없기도 했고, 밤에는 헬스장 낮에는 수영으로 살면서 최대 운동량을 기록했다.
남편은 뉴질랜드에 먼저 도착하고 걸어서 3분 거리 헬스장에 등록을 했고, 나도 도착과 동시에 등록당했다. 생각해 보니 스무 살 무렵 엄마와 동네 헬스장에 등록했었는데, 다른 기구들은 건드려볼 엄두도 안 나고 러닝머신과 자전거만 몇 번 타다가 금세 발길을 끊었었다. 지금은 남편이 옆에서 기구 사용법이랑 동작을 알려주니 겁은 덜 났지만 근육들이 아파왔다. 작년 9월부터 연말까지 3개월가량을 주 5~6일 헬스장으로 끌려가다가 결국 올해 한국 다녀와서는 주 3일로 타협을 했다. 한국 갔을 때 인바디를 재보니 체지방률은 낮아졌고 근육량이 늘었다. 남편이 일을 하니 술 먹는 빈도도 줄고 강제로 건강해져 버렸다.
우리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데는 뉴질랜드라는 특수성이 있다. 우선 의료시스템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다 보니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스스로 체력을 관리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건 당연하다. 두 번째로, 뉴질랜드에는 생활체육이 자리 잡고 있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늦은 시간 집에서 영화 보는 것 말고 할 게 많지 않은 이곳에서 24시간 열려있는 헬스장은 저비용 고효율의 건강한 취미생활이다. 우리가 다니는 헬스장에도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와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날씬하고 여리여리한 몸보다는 탄력 있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몸을 긍정적으로 여긴다. 초반에는 내 뱃살이 부끄러워 벙벙한 옷을 입곤 했는데, 이제는 운동할 때 각 부위에 힘이 잘 들어가는지 보기 위해 브라탑에 레깅스를 입는다. 누구도 삐죽 튀어나온 내 뱃살을 보지 않고 본인 운동에만 집중한다.
여전히 여행을 너무 사랑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내 짧은 방학에 맞춰 남편이 휴가를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정도 통장 잔고도 아직은 불안정해서 아쉬움을 넣어 놓을 뿐. 그래도 연말에 같이 한국 들어갈 비행기표를 끊어 두었으니 한국을 여행처럼 다녀올 날을 고대하게 된다. 여행은 아니더라도 남편 퇴근 후 날씨가 좋으면 바닷가로 드라이브 가는 게 어느 정도 내 마음을 달래 준다. 바닷가마다 모래 색도 물 색도 다르니 그날 기분에 따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게 좋다. 한국에서 스파크로 부산과 제주를 수차례 오갔듯이, 아직은 가까운 거리들만 다니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