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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학생 May 12. 2023

제주 한 달 살기

#3 뉴질랜드엔 언제 갈 수 있을까

6년 정도 쉬지 않고 일을 하다가 갑자기 백수가 되니 너무 허전했다.


뉴질랜드는 3월부터 국경을 폐쇄하고 영주권자나 특별 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고 다니던 동네 요가원도 코로나로 인해 언제 집합금지가 내려질지 몰랐다.


내 퇴사와 함께 남편은 9월 말까지 일하고 같이 제주도에 내려가기로 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남편은 커피 머신 정비를 배우고, 난 관심이 있던 파이썬 온라인 강의 듣기로 했다. 작고 귀여운 스파크에 한 달 동안 필요할 우리 살림을 가득 실어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에어비앤비로 빌린 스튜디오는 베란다에서 서귀포 앞바다가 내려다보였고, 바로 근처에 버스정류장과 다이소가 있어 오래 지내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10월의 제주도는 평화로웠다. 날씨는 화창한데 코로나로 외국인 관광객은 막히고 내국인도 많이 움직이지 않을 때였다. 남편은 커피 머신 설치 및 정비하는 곳에서 견습생이 되어 현장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 육지에서는 주로 각 머신 제조사에서 설치와 수리를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제주도는 섬 특성상 위탁을 받은 업체에서 여러 제조사 머신을 취급해 다양한 종류를 다뤄볼 수 있는 게 남편이 제주도에 온 가장 큰 이유.


남편 일이 없는 날이면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고, 평소라면 한참 고민하다 마셨을 비싼 종류의 커피들도 실컷 마셨다.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뉴질랜드를 닮은 제주도가 좋아 혹시 한국에 정착하게 되거든 제주도에서 살아볼까 하는 얘기를 쉴 새 없이했다.



제주도에 있으면서 뉴질랜드 대학 석사과정에 지원했는데, 한국에서 공부한 과정과 겹친다며 연구석사에 지원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연구석사는 주제를 정한 후 논문에 집중하는 과정이라 영어로 다양한 수업을 듣고 싶던 내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 MBA로 마음을 돌렸다. 마흔 언저리 즈음 공부하고 싶던 분야였는데 십 년쯤 일찍 공부하면 좀 더 흡수가 잘되겠지 하는 기대가 한몫했다.


육지에 볼 일이 있어 잠깐 올라온 사이 둘째 조카가 태어났다. 덕분에 남편은 먼저 제주도에 내려가고 산후조리원에 있는 언니를 대신해 엄마랑 첫째 조카를 보며 일주일 뒤에 제주도로 돌아갔다.


남편과 우리 차가 제주도에 있으니 제주도가 우리 집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가 머무르던 스튜디오는 아쉽게 추가 연장이 안되어 표선에 있는 2층 집을 에어비앤비로 일주일 예약했다. 마지막 일주일은 한동안 못 올 우리가 좋아하던 장소들을 다시 찾았다.


제주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우리 집과 언니네 집만 오가며 둘째 조카 육아에 동참하면서 겨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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