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긍정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창업자 정주영 회장 역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항상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시련이 와도 포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삶은 실패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내가 그의 사상과 이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평이란 저자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끈 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그가 생각하는 현대라는 그의 분신이 지금의 현대와는 꽤 차이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있는데 그는 천상 기업가라는 사실이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나에게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연한 것을 주절주절 떠드는 데는 책을 읽는 내내 그가 기업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서평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머릿속에 자꾸 글들이 엉켜져 들어오니 서두가 길어진다. 빨리 서평을 써야겠다.
정주영 회장은 말한다.
운은 무엇인가.
운이란 별 것 아닌 '때'를 말한다. 좋아질 수 있는 기회 즉, 좋은 때가 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고 꽉 붙잡아 제대로 쓰면 성큼 발전하고, 나쁜 때에 부딪쳐도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하면 뛰면 오히려 좋은 때로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길이 아무 데도 없다는 체념의 말을 곧잘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찾지 않으니깐 길이 없는 것이다. 빈대처럼 필사적인 노력을 안 하니까 방법이 없어 보이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 일이 잘되는 건 운이 좋다 말하고 자신의 일이 순조롭지 못할 때는 운이 나쁘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스스로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나쁜 운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원시원이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이라면 운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그 운을 길운과 흉운으로 나누는 건 자신뿐이다. 나 역시 20년을 자영업을 하면서 남 탓과 나라 탓을 해왔다. 내 탓은 단지 운이 없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 운을 잡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마저도 다행이었다. 2년 전에 내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남 탓과 나라 탓을 해왔을 테니까...
정주영 회장은 말한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것을 나에게 상기시켜준 일이 생각났다. 바로 고령교 복구공사였다. 그 공사는 나를 위기로 몰아놓았고 실패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고령교 공사는 착공 1년이 지났으나 교각 한 개도 박아 넣지 못했다. 게다가 물가는 120배로 뛰었다. 걷잡을 수 없었다. 회사 재정은 바닥이 나고 인부들은 임금 체불에 파업까지 강행했다. 그러나 나는 어쨌든 고령교 공사는 내 몸을 팔아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신용이라는 나의 자산 때문이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인간은 한 번 신용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극복하고 넘어가 한 과정의 시련으로 만들어야지 그대로 손 들고 주저앉아 영원한 실패로 기록되게 할 수는 없었다. 뜻을 이룰 때 실패의 뿌리가 생긴다. 이 시련으로 나는 실패의 뿌리를 잡았다. 결국 나는 동생들과 매제의 집을 팔아 고령고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이 일로 엄청난 적자를 보았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이 적자로 생긴 빛을 청산하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이일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령교에서 얻은 이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득은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안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것은 시련이지 실패가 아니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은한 실패는 없다.
시원시원이 말한다.
시련은 극복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뒤돌아도 면 순탄하게 삶은 없을 것이다. 삶에 시련은 있을 거고 거기에 반드시 극복한 자신이 존재한다. 나도 시련에 극복한 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자신을 모를 때가 많다. 흔히 시련이라면 절체절명한 순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련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선택할 때 나는 그것이 시련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학을 들어가기 전 재수를 선택했을 때도, 16년 전에 결혼이란 문제를 접혔을 때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7년 전 도매업에서 소매업으로 바꾸었을 때도, 2년 전에 독서를 시작했을 때도 나에겐 시련이었다.
이처럼 시련에는 크기가 없다. 자신의 생각하는 시련이 남들이 생각하는 시련이 될 순 없다. 아주 사소한 시련이라도 자신에게는 큰 시련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지금 여기에 서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주영 회장의 고령교의 건설은 그의 시련이다. 거기에 있어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의 시련이 있을 것이다. 빚쟁이들 또한 그들의 시련이 있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를 했을 때의 일이다. 친구는 자신의 주식이 15만 원이 떨어졌다며 고민을 했다. 그 당시 내 주식의 손해는 130만 원이 넘을 때였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야! 나는 130만 원이나 손해 봤어, 15만 원 떨어진 거 가지고 유난 떨기는..."
그러자 친구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나에겐 15만 원이 너의 130만 원보다 소중해"
친구에 말에 쇠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130만 원 손해가 친구의 손해보다 컸으니 그의 말이 유난 떠는 것처럼 느꼈을 테다. 무슨 일이든 자신의 시련이 제일 큰 법이데 나는 친구의 손해가 나보다 작으니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시급이 제일 클 것이고 기업가는 회사 이익이 제일 클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말한다.
사람은 보통 적당히 게으르고 싶고, 적당히 재미있고 싶고, 적당히 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적당히'의 그물 사이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빠져나가게 하는 것처럼 우매한 짓은 없다. 기업이란 현실이요, 행동함으로써 이루는 것이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머리로 생각만 해서 기업이 클 수는 없다. 우선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에 매일이 새로워야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해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또 한 테두리 커지고 새로워야 한다. 이것이 가치 있는 삶이며 이것만이 인류 사회를 성숙, 발전시킬 수 있다.
시원시원이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다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하루를 소중히 사는 사람은 드물며 그 하루를 가치 있게 사는 사람도 드물다. 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과 하루가 매일 새로운 사람의 차이는 목표의 차이다. 목표가 없는 열심히는 현실에 안주하는 삶이고 목표가 있는 열심히는 미래의 삶이다. 누구나 '적당히'를 원하지만 언제나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정주영 회장이 말한다.
나는 우리의 경제가 선진 수준에 도달하려면 세계 시장에 뛰어들어 부를 가진 나라와의 거래로 부를 끌어들여야지, 좁디좁은 이 나라안에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거래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기로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이처럼 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안전선을 쳐둔다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며, 기업에 있어서 제자리걸음이란 후퇴와 마찬가지이다. 방어가 공격보다 반드시 더 쉬우리라는 법도 없고 공격이 방어보다 반드시 더 어렵다는 법도 없다. 우물쭈물하다가 남의 꽁무니만 쫓아서는 이미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 의해 시장이 분할되고 고정되어, 겨우 부스러기나 얻어먹게 되는 법이다.
시원시원이 말한다.
자신이 큰 변화를 얻고 싶으면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운동을 하고 싶으면 운동하는 무리에 들어가야 하고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다이어트를 하는 무리로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다. 그 이후는 자신의 의지와 경쟁심리 속에서 꾸준함을 키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늘 어색하다. 우리는 그 이유 때문에 익숙한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러 있다. 그리고 자신의 안전망을 주위 사람들에게 걸쳐 놓는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문제가 발생되면 의지하는 건 늘 주위 사람들뿐이다.
내가 예전의 삶에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은 언제나 신선한 영감을 주고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여기서 새로운 사람이란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의 환경과 관계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시작된다.
정주영 회장은 말한다.
"해보기나 했어"
이것은 지금도 내가 많이 쓰는 말이다.
조선업을 처음 시작할 때도 자동차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도 늘 무리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일단 해보고 말하라고 한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사고에는 실패가 없다.
우리는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 어떤 환경,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기능공이든, 중급 기술자든 고급 기술자든, 구멍가게 배달꾼이든, 학생이든, 관리든,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주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전심전력으로 완수하면서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향상된 미래를 꿈꾸기에 항상 일이 즐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때문일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떤 처지에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가능한 일은 한 가지도 없다. 가능성에 대한 의심, 중도의 좌절, 독약과도 같은 부정적인 회의만 없다면 누구든지 무슨 일이든 뜻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노력이 따라야 한다.
긍정적인 사고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불행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인류의 모든 발전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주도 아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원시원이 말한다.
고등학교 선생님이 친구에게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나도 해봤는데 아무 소용없어"라고 했다. 만약 내가 그 친구의 말을 해보지도 않고 믿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남의 말을 잘 듣고 따른다. 게다가 자신의 해보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마치 자신이 해본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말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그 예로 내가 친구에게 해준 말이 다시 돌아 나에게로 온 적이 있다. 남들의 말이 내 경험이 될 수 없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내 경험이 될 순 없다.
우리의 마음은 긍정보다 부정이 많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산이고 해야 할 것은 나무다. 그런데 나무가 모여 산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목표가 너무 커서 포기할 뿐이다. 정상에 오르려면 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는 밑이 아닌 정상에서 출발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밑이 아닌 정상에서의 출발은 추락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부동산과 주식이 그러하다.
정주영 회장은 말한다.
운이란 '때'라고 생각한다. '때'는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다. 그러나 '좋은 때'라고 손 놓고 앉아 놀아도 마당으로 호박이 혼자 굴러 들어와 주는 것은 아니며, '나쁜 때'라고 해서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더 나쁜 결과를 맞게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여건을 불행하게만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고, 반면에 어떤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그것이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시련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잘 발전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는 좋은 면 나쁜 면이 항상 공존하고 있고, 또 그것은 밤이 낮으로 바뀌고 낮이 밤으로 바뀌듯 항상 변화한다.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좋을 때'도 놓치지 않고 잘 잡아 쓰고 '나쁜 때'는 더더욱 부지런히 노력해 수습하면서 비켜가기 때문에 나쁜 운이 크게 작용을 하지 못한다.
반대로 게으르며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때'가 와도 손이 늦어 못 붙잡아 '좋은 때'를 '나쁜 때'로 만들고, '나쁜데'는 운 탓만 하면서 좌절 속에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항상 불운의 연속으로 일생을 보낸다.
시원시원이 말한다.
나의 친척 중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친척 중에 제일 가난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이 있었다. 그것도 친척 중에서도 가장 작은 땅이었다. 몇백 평 안 되는 땅이었는데 다른 친척들은 하나같이 땅을 팔 때 그는 궁핍해도 땅만은 절대 팔지 않았다. 오늘날 땅 값이 치솟아 그는 친척 중에 잘 사는 부자가 되었다.
운이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운은 어디에서나 존재하지만 그것을 발견해서 운으로 만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정주영 회장은 말한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하여야 하고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 또한 나의 발전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며 어떤 어려운 일에 봉착해도 기어코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성취하고야 만다는 굳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성취했다면 그 사람은 부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뜻한 바의 성취가 바로 부의 성취다.
시원시원은 말한다.
흔히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경제적 자유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지금의 상태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은 늘 두렵다. 나 역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수만 가지 걱정으로 하지 못했다. '잘 될까?, 잘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부터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불안에 생각만 하고 미리 결론을 지어 시작도 못한 일이 수두룩하다. 일단 해보면 그런 걱정은 자신의 기우일 뿐이라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 느낀다. 그러니 걱정 말고 해 보면 어떨까?
정주영 회장은 말한다.
현대는 해냈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이 해냈고 현대건설이 우리나라 모든 산업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88 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현대'이다.
죽어가던 한강을 맑은 물로 만들고 고수부지를 만든 것도 우리 '현대'의 생각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러했고 부산항을 비롯한 항만들이 그렇고 발전소들이 그러하며 오늘날 우리나라 전력의 50%를 공급하면서도 사고 없이 높은 가동률을 내는 원자력발전소도 현대건설의 업적이다.
과거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우리는 이 나라 경제발전, 제2, 제3의 경제 도약에서도 중추 역할은 우리 '현대'의 몫이라고 본다. 그것이 '현대'의 사명이며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주영 회장이 있을 때의 '현대'와 지금의 '현대'와는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HDC 현대 산업 개발'의 사건이 광주에서 일어났다.
아파트 외벽 붕괴 사건이었는데 지금 정주영 회장이 그 광경을 봤더라면 크게 노했을 것이 자명하다.
정주영 회장의 '현대'는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현대'였고 창조하는 '현대'였고 정치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현대'였고 자부심이 강한 '현대'였고 나라에 이바지하는 '현대'였기에 지금의 '현대'를 바라보는 나는 안타깝다. 하루빨리 지금의 '현대'가 정주영 회장의 '현대'의 정신을 계승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