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니 지음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이었다. 내 책상 위에는 스케치북이 있었고 그 옆에는 크레파스가 놓여있었다. 선생님은 단상 위에 사과 하나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각자의 스케치북에 선생님이 올려놓은 사과를 그렸다. 네모난 하얀 공간 위에 다양한 사과들이 열려있었다. 색도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그것 모두는 우리의 사과임이 분명했다.
나 역시 커다란 스케치북에 조그만 사과 하나를 그렸다. 그리고 해도, 나무도 그렸다. 숲도 그렸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스케치북에 사과만 있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혼을 내셨다. 그래서 나는 그려놓은 종이를 뜯어내고 새로운 스케치북에 친구들처럼 사과만 그렸다. 스케치북에 그려놓은 사과, 어쩌면 그것은 지금 우리의 일상과 닮았다.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산다. 산다는 것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일상에 지친 우리의 거대한 사과는 스케치북을 가득 채운다. 잎도 줄기도 그릴 공간조차 없는 거대한 사과, 그래서 우리는 늘 바쁘다.
바쁘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하는 우리는 피곤하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그려놓은 사과에 잎을 달고 줄기를 달아 사과나무를 만드는 일이다. 스케치 북안에 거대한 사과가 아닌 다른 것들로 지금의 사과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 지금 가진 것을 덜어내고 새로운 것을 입히는 일은 성장을 체험하는 일이다. 그것이 일상 채우기이다.
일상을 채우는데 앞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우선 지금 일상을 덜어내는 것부터 하자.
그녀를 만난 건 3년 전이다. 습관을 만드는 모임이었는데 그때 나는 아내의 권유로 다니게 되었다. 우리는 새벽 기상과 독서와 감사일기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서평도 작성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정말로 힘들었다. 매일 쓰는 일기는 학창 시절 개학을 앞두고 미룬 일기를 하루에 쓴 것이 생각나게 하였다. 그 당시 나의 몸과 마음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심한 알레르기가 있었다. 거부반응은 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자신만의 습관을 가져가려 노력했고 일상에 진정으로 날 위한 것들로 채운 그녀는 어엿한 두 권을 집필한 작가가 되었다.
"10분 30분 그리고 두 시간, 지금 나는 매일 아침 두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으로 채웁니다."
"3년 동안 저는 책 500권을 읽었고, 1년 동안 블로그와 브런치에 365개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강단에 서있는 요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제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저의 일상에 진정으로 날 위한 것들로 채웠을 뿐입니다."
"그것이 저를 변화시켰고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들었으며,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는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안다. 그 경험이 얼마나 자신을 통제해서 만든 것인지를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작은 일이라도 무엇을 시도하든 각오가 필요하다.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표류를 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번아웃은 나를 잃었을 때 찾아오는 것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몸이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나는 내가 번아웃을 일으켰을 때를 생각해 보았다. 6년 전에 갑자기 모든 것이 하기 싫어졌다. 이유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다 보니 느끼지 못했던 걸까? 그렇다고 그때 당시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하지 않았다. 몸은 처지고 정신은 하루 종일 현실에 꿈의 경계에 외줄 타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면 울음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흔히 하는 말로 우울증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우울증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인생을 표류하고 있었다.
"출근하기 전 10분만 일찍 일어나 오직 나를 위해 써보자고 마음먹은 게 다였습니다."
"그 10분 동안 작은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침대 정돈을 하고 스트레칭으로 굳어진 몸을 풀었더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더군요"
"며칠이 지나자 이제 10분으로는 모자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0분 일찍 일어나 다른 일들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일찍 일어난다고 해도 내 주변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삶이 점점 바뀌어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일상을 채운 새벽 기상에 대해 말했다.
나 역시 6년 전 번아웃이 왔을 때 한 행동은 산책이었다. 집 앞 산길을 오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시간 덕에 번아웃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 아니 행복하려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계속 추가하거나 달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버텨야 한다고 한들 달라질까요?"
"나는 열심히 했는데 막상 결과는 그대로인 경우는 없었나요?"
"그렇다면 내 노력이 부족해서였을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운이 더 중요한 걸 까요?"
"왜 더 애를 쓰면 쓸수록 더 안될까요?"
그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며, 누군가의 지시에 움직이는 우리들은 행복을 원한다. 언제 찾아올지도 모를 행복을 바라며 열심히 산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이 행복이라 말하는 것을 동경하고 따라 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더 잘해보려고 인생에 자꾸만 무언가를 더 집어넣습니다."
"빡빡한 일정을 채우고 몸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닙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지쳐 다른 이들이 말하는 여유는 나에게 사치처럼 생각하게 되죠"
그녀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지금도 나는 주변인들에게 독서를 권한다. 그중 몇몇은 공통적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매일매일이 피곤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냐"
"책 읽을 시간 있으면 몇 분이라도 더 자겠다."
"지금도 피곤하구먼..."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몇 시에 자는데요?"
그들 대부부는 자는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우선 현재 상황을 알고 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삶의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무리하기 십상입니다"
"나에게 적합한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죠"
"무작정 채워 넣기만 한다면 일상은 더 복잡해지고 나중에는 오래 지속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빼기가 먼저입니다. 삶에서 줄일 요소를 정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펴고 말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좌우로 쳐다보았다.
"조금 일찍 자거나 tv를 보는 시간을 줄이는 건 어떨까요?"
나의 질문에 그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그건 어렵겠는데"
"나만 안 보면 쉽겠는데 와이프가 TV를 틀어놔서 볼 수밖에 없어"
그들의 말에 나는 다시 물었다.
"사장님 먼저 자면 되잖아요?"
"에이 안방에서 TV 소리도 들리고, 자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잘 깨서 안돼"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단지 독서를 하면 좋아요라고 했을 뿐인데 그들은 '바빠서 안돼, 피곤해서 안돼, TV를 봐야 해서 안돼'라는 핑계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는 확신하는 순간 수많은 핑계를 만들어 낸다.
그녀의 말을 들은 한 청중이 물었다.
"일상 채우기를 하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습관을 다 바꿔야 하나요?"
그녀는 그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설마요?"
"전부 다 바꾸려면 생활 자체가 힘들어집니다. 전체를 바꿀 수도 없지만요"
"혹시 파레토의 법칙을 아시나요?"
그녀의 질문에 그는 양손과 어깨를 으쓱거렸다.
"파레토의 법칙이란 80퍼센트의 결과가 20퍼센트의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죠"
"20퍼센트의 변화로도 우리의 삶은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저도 밤새 일하며 의지를 줄 태우지도 않았고, 무리하게 성격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나를 들여다보면서 아주 천천히 작게 시도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의욕에 가득 차 좋은 습관들을 들이려고 노력한 경험들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다들 성공하셨나요?"
"물론 성공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죠"
"좋은 습관이라도 점점 버겁다면 그건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아주 천천히 작게 시도하세요"
"지금 당장 느끼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다 보면 조금씩 성장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습관을 덜어내지 않고서는 새로운 습관을 더할 수는 있어도 지속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집을 이사할 때와 이사 나갈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의 생활공간이 유지되고 있는가? 짐이 늘어나 나의 생활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습관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습관을 덜어내지 않고 채우기만 한다면 마음의 여유는 없어지고 조급한 마음만 앞서게 된다. 그런 상태의 나는 새로운 것이 버겁게 느껴져 포기하고 만다. 10분 일찍이, 10분 운동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이 내가 성장하는 지름길이다.
"해보지 않아서 모를 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저는 서른이 넘도록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으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 글을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지도 몰랐고, 글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내일을 기다릴 뿐입니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가능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작을 해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아주 많이 보일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시작하세요"
"아주 작은 것부터 자신의 일상을 채워보세요"
"제가 감히 여러분에게 확언하겠습니다"
"점점 성장하는 자신을 분명히 느끼게 될 것입니다"
확신에 찬 그녀의 말에 청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기와 글쓰기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물론 매일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매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모든 일에는 저항이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하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하다가 잠시 한눈을 팔기도 하고 다른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다 말다가 습관이 자리잡기도 하고 1년이 넘게 하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시도하려는 습관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눈을 팔아도 의지가 약해도 다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시작하는 순간 멈출 순 있어도 실패는 없을 것이다. 이것 또한 나의 성장에 필요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