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영업자입니다.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일시적인 피로나 무기력함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지침이 아니었다. 삶의 방향을 잃고 떠도는 무거운 방황이었고,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드는 침묵의 고통이었다.
그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얼마 전이었다.
나보다 연세가 훨씬 있으신 거래처 사장님을 오랜만에 뵈었을 때였다.
그분은 최근 오랜 꿈이었던 포르셰 유럽 투어를 다녀오셨다. 코로나와 사업의 굴곡 속에서도 마음 한켠 간직해온 소중한 계획이었다. 4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이뤄진 꿈. 분명히 환한 미소와 벅찬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분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다.
말투는 느렸고, 눈빛은 멀리 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사장님,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그분은 한참을 머뭇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행은 좋았지. 하지만… 돌아온 이후로는, 삶이 어딘가 허전해. 그동안 해온 일들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고, ‘앞으로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만 가득해. 점점 무기력해지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더군.”
그 말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가 겪는 감정은 낯설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성취 이후에도 만족이 없고, 꾸준히 달려왔음에도 무언가 놓친 것만 같은 느낌.
눈앞의 일은 계속되는데 마음은 점점 뒤처지는, 그런 고요한 무너짐이다.
그분은 예전, 전 세계를 돌며 1년간 여행을 했던 분이다. 가진 것보다, 용기 하나로 길을 나섰고, 돌아와 다시 사업을 일으켰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때는 두렵지 않으셨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땐 두렵지 않았네. 뭘 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의 말은 마치, 오랜 시간 나에게 질문해왔던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장님, 번아웃이라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멈추어 바라볼 수 있을 때가, 진짜 회복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물었다.
“이 매장, 어떠세요? 편안하신가요?”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말했다.
“마치 카페에 앉아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편안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은 저도 같은 이유로 매장을 조금 바꿔봤습니다.”
밖에서 보면 평범한 열쇠 가게지만, 안쪽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두었다.
커튼 뒤로 열쇠 부품들을 숨기고, 보이는 자리엔 디지털 도어록만 깔끔히 진열했다. 커피 한 잔 놓고, 음악을 틀고, 벽엔 내가 좋아하는 사진 한 장. 마치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내 안의 안식처처럼 말이다.
처음엔 그저 인테리어의 변화였지만, 그것은 곧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쉼은 번아웃의 그림자를 조금씩 밀어냈다.
하루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자 잊고 지냈던 생각들이 고개를 들었고, 작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올랐다.
번아웃을 이겨낸 해답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만의 공간,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그 단순한 비밀이 내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들었다.
사실 자영업자의 번아웃은 매출과는 관계없다.
오히려 일정한 안정이 찾아온 이후, ‘이게 다인가?’ 하는 질문이 마음을 파고들며 시작된다.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이루었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유 없는 무기력함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희망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머무는 공간, 나의 리듬, 나의 감정과 시선.
그 작은 조각들을 다시 나만의 방식으로 배치하기 시작할 때, 삶은 천천히 제 빛을 되찾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사장님께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지금은 번아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한 멈춤일지도 몰라요.
매장을,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나만의 쉼이 있는 공간으로 바꿔보세요.
그 안에서 스스로와 조용히 대화할 수 있다면,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사무실에서, 익숙한 공간 속에서 무언가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지금 느끼는 그 무기력함은 당신이 무너진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길을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멈춤을 두려워 마세요.
그 잠깐의 멈춤 속에서, 당신은 더 나다운 속도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
번아웃,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아주 작고 따뜻한 비밀,
나만의 공간에서의 편안함’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