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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사소하고, 누군가에게는 전부인 것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매일 아침 7시. 헬스클럽 문이 열리기 무섭게 들어오는 한 어르신이 있다. 나도 이른 시간 운동을 다니는 편 이지만, 그 어르신은 언제나 내가 오기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작은 체구에 단정한 운동복, 항상 같은 표정. 그 모습은 어느새 이 헬스장의 일부분이 되었고, 나는 그분을 속으로 ‘고인 물’이라 부르곤 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루틴을 지키는 분이라는 뜻에서 말이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어르신은 평소처럼 일찍 오셨고, 나는 평소처럼 조금 늦게 들어섰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도중,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에 문득 손이 멈췄다. 익숙한 그분의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낯설었다.조용하고 성실하던 분이, 무언가에 격하게 말하고 있었다.


급히 나가 보니, 어르신은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관리자가 내민 휴대폰을 들고, 전화 너머 누군가와 언쟁 중이었다. 주변에는 몇몇 회원들이 머쓱한 얼굴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직원의 얼굴에도 조심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대화의 전말은 이랬다. 어르신은 작은 체구 때문에 늘 작은 사이즈의 운동복을 원하셨다. 이전 관리자는 그런 사정을 알고, 아무 말 없이 작은 옷을 미리 챙겨드리곤 했다. 작은 배려였지만 어르신에게는 편안한 ‘관계의 신호’였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바뀐 관리자는 그 사실을 몰랐고, 헬스클럽에서 제공하는 옷은 프리사이즈라며 거절했다.
어르신은 자신이 예전에는 그렇게 입었다며 항의했고, 관리자는 “그건 제가 알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관장과의 전화 연결까지 이어졌고, 관장은 단호히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사이즈를 따로 챙겨드리지 않습니다. 불편하시면 환불해 드릴게요.”

그 말이 떨어지자, 어르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고집스럽던 언쟁은 갑자기 멈추었고, 어르신은 묵묵히 탈의실로 들어가 짐을 챙기더니 아무 말 없이 헬스장을 나섰다. 그 뒤를 바라보는 직원은, 처음 겪는 상황에 말을 잇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잊지 못했다.


어쩌면 옷 하나 때문이 아니라, 익숙했던 친절이 더 이상 ‘자기 몫’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프리사이즈 제공 원칙’이지만, 어르신에게는 매일 아침 자존감을 지켜주는 작은 배려였던 것이다. 그 상황을 지켜보며 문득, 나의 일도 떠올랐다.


나는 열쇠 매장을 운영하며 디지털 도어락을 설치하러 고객의 집을 방문한다. 그럴 때 종종 이런 요청을 받는다.

“이거 도어크루저도 있는데, 그것도 같이 설치 좀 해주세요. 서비스로요.”
“이 안전고리도 간단하잖아요. 이것도 같이 좀 해주세요.”

나는 정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최대한 정중히 말한다.
“일부는 가능하지만, 전부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안방만 도배하러 불렀는데, 도배지 사놨다고 거실과 건넌방까지 다 해달라고 하시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고객은 보통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때로는 못마땅한 얼굴을 남기고 돌아선다.


서운함은 이해한다. 그분들에게는 작은 요청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요청은 누군가의 시간을, 노력을, 손길을 담보로 한다. 그것은 단순히 “서비스”라는 한마디로 정의되기엔 무거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안다. 손님은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말하고, 나는 “이 정도라도 안 된다고 하면 인색해 보이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지만 결국 서비스란, 주는 사람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받는 사람이 요구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헬스장의 어르신도, 내 작업을 요청하는 고객도, 그 마음속에는 아마도 한때 받았던 친절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너무 따뜻했기에, 이제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착각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러나 세상엔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시작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들이 있다. 익숙한 것의 소중함을 우리는 사라졌을 때서야 깨닫는다.


오늘도 나는 도어락을 챙겨 들고 고객의 집으로 향한다.

작은 친절이 기대가 되지 않기를,
기대가 권리가 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 권리가 또 다른 사람의 상처가 되지 않기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뇐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배려와 예의의 균형 위에서 유지된다. 그 작은 것이 무너지면, 관계는 금세 흔들린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내 앞의 사람이 원하는 것이 나에겐 사소해 보여도 누군가에겐 전부일 수 있다는 걸, 오늘만큼은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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