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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속, 나를 잃지 않는 법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어느 날,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발끝으로 향했고, 그곳엔 개미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개미들은 열심히 식량을 옮기고 있었다. 작은 몸집으로 자신보다 큰 것을 이고 지고,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참 신기했다. 정돈된 줄,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무리. 하지만 그중 몇몇은 행렬에서 이탈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 개미들 중에서 식량을 가장 먼저 찾은 개미는 어떤 대우를 받을까?’
‘가장 큰 짐을 나르는 개미는 보상을 받을까?’
마치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늘 식량을 찾았으니 넌 관리부장으로 특진!"
"넌 무거운 걸 날랐으니 내일 하루는 유급 휴가!"

웃픈 상상이었지만, 그 상상은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가족이었다. 그다음은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나.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또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그 인정이 나를 버티게 하는 연료이자, 내 삶의 방향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밥을 먹을 때도, 샤워할 때도, 운전 중에도, 누워서 쉬고 있을 때조차도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심지어 내가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아이들에게까지 스며들었다. 어느 날, 큰아이가 물었다.

“아빠, 힘들어?”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당황을 숨기며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그 말 뒤에 쓴웃음이 따라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늘 힘든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 처음 깨달았다.내가 무의식 중에 반복했던 ‘힘들다’는 말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었는지를 말이다. 그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삶이란 본디 고단한 것이라는 무언의 교육이었다. 그러고 나니, 질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그 질문들은 스스로를 향한 탐색이자, 또 다른 불안이었다.


나는 가족을 위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실히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에 망연해졌다.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맞는지, 틀린지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삶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었고, 그 물음표 끝에서 알게 된 건 단 하나였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인데, 정작 주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각오나 대단한 용기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드라마처럼 멋지게 변화를 맞는 일도 없다. 우리는 다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작은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을 따라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나도 예전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삶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의 비밀’을 좇으며,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다 그들의 말만 믿고, 그들의 방식만 흉내 내다가 몇 번의 좌절을 맛보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만의 고통과 시간이 쌓여 만든 결과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들의 방식으로 나를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고, 평범한 자영업자가 되었다.그 후로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저 흔들리지 않는 삶을 택했다.


나는 종이의 중간을 떠올렸다. 반으로 접으면 선명하게 생기는 접힘선. 위가 되든, 아래가 되든, 중간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그 중간선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간은 결코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줄 타기 같은 삶.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버티는 매일. 올라가기엔 무겁고, 내려가기엔 두려운 그 경계선 위에서 나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묶어버렸다. 움직이지 않는 대신 떨어지지도 않게 말이다.


그러나 그 고정된 삶 속엔 내가 원하던 안락함도, 나만의 자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중간의 삶은 오히려 더 외롭고, 더 조심스러운 자리였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어떤 자리든,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


누구를 위해 희생했든, 누구 덕분에 버텼든, 삶의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개미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내게는 전부인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진짜 나다운 삶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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