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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자국, 그 낯선 세상으로

나는 자영업자입니다

by 시원시원

“나 함교수인데, 너 혹시 취직은 했니?”


낯익은 번호도,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그 한마디에 나는 시간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갑작스런 전화였고,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다.


“아… 네, 교수님 잘 지내시죠?”


내 목소리는 낯선 긴장으로 뒤섞여 있었다. 사실 그 순간까지 나는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회사라는 공간 자체가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조직 안에 있는 것도 나에겐 낯설고 버거운 일이었다.


“아직 취업 준비 중입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함교수님은 반가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잘됐네, 다름이 아니라 내 친구가 제약회사를 하는데, 직원을 구한다네. 너 전산 전공했잖아?”

“네, 복수 전공했습니다.”

“그럼 이번 주 금요일, 오전 10시에 구로에 있는 회사로 가봐. 내가 친구한테 얘기해놓을게. 면접은 그냥 가서 보면 될 거야.”


말씀은 쉽게 하셨지만, 나는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불안감이 몰려왔다. 아직 회사에 다닐 준비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왜 나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교수님과 더 친했던 건 나 아닌 다른 친구였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이 물밀듯 밀려왔다.

‘교수님은 날 어떻게 친구에게 설명했을까?’

‘혹시 내가 면접에서 실수라도 하면 교수님 얼굴에 먹칠이 되는 건 아닐까?’


사실 나는 그 무렵, 자영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시던 열쇠업을 물려받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남대문에 있는 사촌형 매장에서 제품을 외우고, 기술을 익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전화 한 통이 나의 삶을 양갈래 길로 나누어버렸다.


그 주 금요일, 나의 첫 정장 차림은 얼떨떨했다.
거울 속의 나는 서툴고 어색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래도 마음속 갈림길은 점점 교수님의 선택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면접 당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오래된 겔로퍼를 몰고 제약회사로 향했다.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뛰었다.
엘리베이터 앞, 붉은 숫자가 점점 줄어들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내 몸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영혼은 그곳을 벗어나 어딘가 차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정말 내가 이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 걸까?’


그때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그 사람과 함께 탔다. 그는 나를 한 번 훑어보더니 부드럽게 물었다.


“몇 층 가세요?”

“…7층이요. 감사합니다.”


나는 긴장한 나머지 버튼조차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며, 나의 심장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낯선 세상의 문턱에 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사무실은 대학교 강의실의 책상 간격과 비슷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작은 점에 불과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멍하니 서 있던 나를 한 직원이 발견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오늘 면접이 있어서요.”


그는 짧게 “아, 네.”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몇 분 후, 또 다른 직원과 함께 나타났고 나를 인사담당자에게 인계했다.


고지식한 뿔테안경과 광이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그는 인사 담당자의 전형적인 이미지였다. 나를 엘리베이터 밖으로 이끌며 말했다.


“시원 씨 되시죠? 이쪽으로 오시죠.”


사무실 사이사이 책상들을 지나며 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직원들의 고개 돌림은 내 시선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이 과장입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열린 문 안에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쪽은 대표님이시고, 이쪽은 전무님이십니다. 저는 이만...”


그 순간, ‘같이 있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2분 남짓의 동행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나는 그제야 알았다.


대표는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함 교수님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면접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차량 보유 여부, 자택 유무, 부모님 직업, 형제 관계까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 이야기가 아닌, 내 주변을 그렇게 궁금해할까?


그러던 중 대표가 말했다.


“아들 혼자면, 아버지 가업을 이어야 하지 않나요?”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상황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면접은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제약회사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귀하는 안타깝게도 인연이 닿지 않을 듯합니다.
면접에 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귀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문자를 받은 순간,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안심이 되었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함교수님께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선배가 있었다”고 강의실에서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 밥 위에 얹힌 코는 바로, 나였다.

그날 이후, 교수님의 추천은 더 이상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 해 뒤, 다른 교수님의 어머님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함교수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감사와 사죄의 말을 전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내 인생 첫 면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짧은 시간은
내가 회사원이 아닌, 자영업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갈림길의 다른 길 위에서
열쇠를 깎으며 누군가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그 첫 면접의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이제는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그 문을 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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