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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을 든 아이

단편 소설

by 시원시원

작은 마을의 가장자리에, 나무판자를 겹겹이 이어 붙인 듯한 집이 하나 있었다.

그 집은 너무도 오래되어 비가 오면 지붕 틈으로 물방울이 떨어졌고, 겨울이면 바람이 창문 틈새로 스며들어 방 안을 맴돌았다.


그곳엔 아이가 혼자 살고 있었다.


이웃도, 가족도, 친구도 없이.
아이의 삶은 마치 잊힌 흑백 사진처럼 조용했고, 종종 고요함은 외로움이 되어 아이의 심장을 조용히 때렸다.


밤이 되면 어둠은 더 짙었다.
창밖의 바람 소리는 종종 울음처럼 들렸고, 낡은 마룻바닥은 아이가 숨을 쉴 때마다 삐걱였다.
그래서 아이는 항상 촛불을 켜놓고 잠들었다. 작은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의 두려움이 조금씩 물러나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잘 웃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눈빛은 반짝였고, 입꼬리는 자주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건,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아이의 눈에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잘생긴 얼굴보다 더 빛났던 건 그의 웃음이었다.

거침없이 사람을 도우며, 사소한 일에도 기꺼이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치 오래전 동화 속 왕자처럼, 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


그는 늘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고, 누군가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다.
땀이 맺힌 얼굴로도 기꺼이 웃었고, 힘든 날에도 등을 곧게 펴고 걸었다.
아이에게 그는, 마음 깊이 동경하고 싶은 '햇살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매일, 그가 지나가는 길목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먼지에 덮인 보도블록 위, 그가 지나가던 시간에 맞춰 작은 그림자가 길게 앉아 있었다.
아이의 하루는, 그의 웃음 한 조각으로 충분히 따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의 귓가에 낯선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바람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곧 그것은 누군가의 고함이었다.
다급하고 거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아이의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그 목소리가 그의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사람들이 하나둘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아이도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뒤따랐다.


좁은 골목의 끝, 수많은 사람들이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다.
그 틈 사이로 보인 두 사람의 실루엣.
그리고 그중 한 명—그가 있었다.


그는 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왜 참견이야, 너한테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갈라져 있었다.
차갑고 거칠었다.
아이의 기억 속에 있던 따뜻한 웃음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아이의 심장이 조용히 쪼그라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동경하던 사람이, 지금 이토록 화를 내고 있다니.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이제 그만해요… 제발요…”


그의 눈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멈칫한 듯했으나, 곧 아이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비켜!”


아이의 작은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팔꿈치와 무릎이 긁혔고, 먼지가 얼굴을 덮었다.
그러나 진짜 아픔은 마음 안에 있었다.
그가 더 이상, 그 ‘햇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날 밤,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었다.

방 한편에 몸을 웅크린 채, 온몸을 떨며 울었다.


'왜 화를 냈을까.
왜 나를 밀쳤을까.
왜, 왜, 왜…'


그의 찡그린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기억 속 웃고 있던 얼굴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울음 속에서 한 줄기 생각이 스쳤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아이의 눈에 다시 작은 불꽃이 피었다.


아이의 목적지는 숲이었다.
낡은 신발을 신은 채, 다친 다리를 끌고 아이는 가시덩굴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하얀 꽃이 핀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하얗고 조용하며, 아주 순수한 그 꽃.
그의 미소를 닮은 그 꽃을 주면, 그가 다시 웃어주지 않을까.


가시는 무자비했다.
아이의 피부를 찔렀고, 옷을 찢었고, 피를 냈다.
하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그 꽃을 찾았다.
작고 희고, 바람에 살랑이는 꽃.


그 꽃을 꺾어, 아이는 소중히 안았다.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이는 행복했다.
그 꽃을 줄 수 있다는 기쁨이, 고통을 잊게 해 주었다.


아이의 손엔 꽃이 들려 있었다.
그의 집 앞에서 아이는 문을 두드렸다.


그가 나왔다.
피곤하고 초췌한 얼굴.
눈빛은 어두웠고,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뭐야?”


아이의 손이 떨렸지만, 조심스럽게 꽃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누구야, 너?”
“왜 나한테 이래?”
“필요 없어, 이런 거.”


그리고 아이의 손에서 꽃을 뿌리쳤다.
꽃은 바닥에 떨어져 잎이 찢기고 흩날렸다.
하얗던 꽃이 먼지에 뒤덮였다.


“더러운 손으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다신 오지 마.”


그는 문을 닫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소리였다.


그날 밤, 아이는 또 울었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꽃을 꺾으러 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매일매일, 아이는 꽃을 들고 그의 집 앞에 섰다.
꽃은 쌓였고, 아이는 점점 지쳐갔다.
몸은 말라갔고, 상처는 아물지 않았으며, 눈은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몸이, 꽃을 든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 작고 여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꽃만이 아직 따뜻했다.


눈물이 흘렀다.

입술을 타고 내려와 땅을 적셨다.


아이의 눈이 감기려 할 때.
누군가가 아이의 몸을 감쌌다.
따뜻하고 포근한 온기.
아이의 눈이 마지막 힘으로 떠졌다.


그가 있었다.
눈물 맺힌 눈으로 아이를 안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의 눈물이 아이의 얼굴을 적셨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그는, 오래도록 그리웠던 미소를 지었다.
햇살보다 따뜻한 미소였다.


아이는 웃었다.
그리고, 흰 꽃을 그의 손에 건넸다.


두 손 사이에서, 흰 꽃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으로 피어났다.



작가의 말 — ‘꽃을 든 아이’는 바로 당신의 내면아이입니다.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닙니다.
당신 안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적 당신은,
자신을 사랑했고,
세상을 기대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군가를 향해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그 아이를 잊어버렸습니다.


지금도 그 아이는 당신 마음속 어딘가에서
흰 꽃을 들고 조용히 기다립니다.


“아프지 마세요.”
“힘내세요.”
“괜찮아요.”
“행복해야 해요.”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당신이 다시 웃을 수 있도록,
그 아이는 매일 꽃을 꺾어 당신에게 건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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