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오늘의 너도
옛날 어느 겨울, 작은 숲 가장자리에 “오늘”이라는 마을이 있었어요. 그 마을에는 따뜻한 바닥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았지요. 몇 달 전, 그는 전원주택이라는 성에 머물렀는데, 성의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발바닥을 살며시 감싸 주는 미지근한 온기가 겨울 아침의 서늘함을 잊게 해 주었답니다. 그 느낌은 참 좋았고, 그 따뜻함은 쉽게 잊히지 않았어요.
시간이 흘러, 그는 다음에 머물 집을 찾기 위해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발걸음이 닿는 집마다 바닥이 하나같이 대리석이었지요. “내가 유행을 잘 아는 걸까? 아니면 그날의 기억이 나를 이끌고 다니는 걸까?” 그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그리고 곧 깨달았죠. 어제 사랑했던 감정이, 오늘의 풍경 속에서 자꾸 다시 흐르고 있다는 것을요.
그는 점점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떤 날은 친절한 사람들만 마주치고, 또 어떤 날은 소소한 불운이 줄줄이 이어졌죠. 마치 마음 어딘가에 작은 상영관이 있고, 거기서 필름을 끼워 재생 버튼을 누르면, 현실이라는 스크린 위로 비슷한 색감과 음악이 다시 깔리는 것만 같았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가 말했어요. 그때 숲속의 작은 새가 답했지요.
“대부분 어제의 너에게서 와. 어제 좋아했던 온기, 한때 품었던 설렘, 놓지 못한 아쉬움이 오늘의 배경을 살짝 물들이는 거야. 그 감정은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나고, 물건의 질감으로 스치고, 가끔 작은 사건으로 너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그래서일까요. 마을의 현자들이 적은 책에는 하나같이 “긍정”이 적혀 있었어요. 단순히 밝게만 살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 네 손에 들린 필름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라는 뜻이었죠. 하지만 현실은 늘 분주하고, 때로는 거칠어요. 할 일과 걱정이 밀려들면 마음의 평화는 사치처럼 멀어지고, 그럴 때 이상하게 불행은 연속 상영을 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상영관 문 위에는 작은 글씨가 있었어요.
“이 상영관의 주인은 너.”
그는 그제야 웃었어요.
“아, 내가 의식하는 순간, 필름을 바꿀 수 있구나.”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지금 내 감정은 어떤 장르지?”
그러자 스크린이 아주 천천히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놀라운 기계를 쓰지 않아도 됐어요. 전원주택의 대리석 바닥에서 올라오던 작은 온기, 카페에서 마주친 낯선 친절, 해질녘 골목을 스치는 잔바람, 그런 사소한 감각들이 상자 속 새 필름이 되어 그의 손에 들어왔거든요.
그 무렵, 마을을 지나던 두 명의 지혜로운 여행자가 그에게 속삭였어요.
한 여행자가 말했지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이 아니라 새로운 눈에서 시작돼.”
또 다른 여행자는 덧붙였어요.
“인생의 대부분은, 네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단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자신이 이미 작은 예언자였다는 걸 알게 되었죠. 지금 선택한 감정이 내일의 장면을 불러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불안은 비슷한 불안을, 고마움은 비슷한 기쁨을, 따뜻함은 또 다른 따뜻함을 데려왔던 거예요. 어느 날 그는 마음의 조명을 먼저 켰고, 스크린은 그 밝기에 맞춰 또렷해졌습니다.
이후로 그는 집을 보러 가면 습관처럼 바닥부터 보았어요. 대리석이든, 원목이든, 장판이든 그 재질은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답니다. 중요한 건 그 위에서 자신이 어떤 온도를 선택해 느낄지였으니까요. 만약 어제의 필름이 너무 낡아 흔들린다면, 그는 주머니에서 천천히 다른 필름을 꺼냈어요. 조금 더 고마운 장면, 조금 더 다정한 음악, 조금 더 자신에게 맞는 색감으로요.
그리고 상영관의 불이 낮게 켜질 때마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답니다.
“오늘의 감정을, 내가 고른다.”
그러면 스크린은 어제의 장면을 조용히 걷어내고, 오늘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비춰 주었지요. 그렇게 오늘의 마을에 주인공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 눈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삶을 다시 상영하기 시작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