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지나갈 때쯤, 운이 도착했다

괜찮아, 오늘의 너도

by 시원시원

오늘 새벽 1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전날부터 심상치 않았던 꽃가루 알레르기.
눈은 따갑고 콧물은 줄줄.
그날 밤 저는 ‘사람’이 아니라 ‘샘’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새벽, 드디어 그 샘이 터졌습니다.


콧물은 폭포처럼 쏟아졌고
코는 꽉 막혀 숨이 막히고
머리는 댕댕 울리고
저는 그 상태로 세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뭐랄까요, 내 삶도 인터넷처럼 ‘잠시 응답 없음’ 상태였죠.
끝나지 않는 멍함 속에서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4시에 겨우 다시 잠이 들었고,
6시에 알람이 울렸습니다.
눈을 뜨는 게 아니라 다시 감는 수준의 피로감을 안고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경로로 산행을 했고,
출근을 했습니다.
정신도, 코도, 의욕도 흐물흐물한 상태였죠.


그러다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제 예약한 손님이었습니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
“죄송한데, 취소하겠습니다.”


이른바 불운 1호.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곧장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 물건을 사 가신 분이었습니다.
반가운 얼굴…일 줄 알았죠.
그분의 한마디.

“이거, 반품할게요.”


아하, 불운 2호.
오늘은 이런 테마인가 봅니다.
별 수 있나요.
쓸쓸히 환불 버튼을 눌렀습니다.

기분이 조금씩 내려앉을 무렵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10일 전 주문한 해외배송 상품.
드디어 오는가 싶었는데…

“항공사 사정으로 인해 6월 1일 도착 예정입니다.”


네, 불운 3호.
도착 예정일도 내 기분처럼 아주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어제 배송 온 벽시계라도 달아볼까 했더니
하… 테두리에 찍힘이 무려 4군데.

바로 반품 신청.

그리고 조금 후, 전화가 울립니다.

“고객님, 반품하러 왔는데 아무도 안 계시네요.”

“지금 매장 안에 있는데요?”


알고 보니 기사님은 다른 지역의 같은 상호 매장으로 가셨답니다.
불운 4호.


그 순간, 드디어 무장해제.
이불처럼 푹 꺼진 마음속에서
내가 중얼거렸습니다.


“오늘은 그냥 불운의 날이구나.”


그렇게 마음을 놓고, 포기하는 듯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고요한 바람이 바뀌듯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손님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조용히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그럼 내일 예약할게요.” 하십니다.


살짝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리고 그 손님이 나가자마자 또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예약 가능할까요?”


오늘 두 번째 예약.
예상치 못한 반전.


불운은 혼자 오지 않지만,
다행히 혼자 가지도 않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 모든 불운은
정말 큰 사고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원망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엇갈림, 착오, 타이밍, 알레르기, 택배, 계절…
인생에서 자주 일어나는 그 소소한 균열들.


오늘 하루가 버라이어티 하게 펼쳐졌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더 안 좋은 일이 생기려던 걸 막아준 거래.”

글쎄요.

꼭 그런 믿음을 가져야만 덜 억울한 걸까요?


하지만 오늘 하루, 저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운은 늘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살짝 기다리면,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저는 오늘을 기록합니다.

꽃가루에 울고, 반품에 당황하고,
그러다 예약 전화에 웃었던 하루.


버라이어티 한 하루를 지나,
지금 저는
조용히 퇴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오늘처럼만 흘러간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전 18화영혼의 바통터치